6월 16일 화요일 QT


자녀를 키울 때 아이들이 어떻게 할지 미리 예측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4-5살 때 마트를 데리고 다니다 보면 장난감 코너를 지나칠 때엔 멀리 돌아가거나 아예 근처엘 가지 말아야 합니다. 아이가 한 번도 조용히 지나친 적이 없습니다. ‘오늘은 사지 않는 거야’라고 몇 번을 다짐을 해도 막상 그 앞에 서면 사달라고 떼를 씁니다. 다짐은 무의미했습니다. 그래서 아예 멀리 돌아가야 합니다. 아이뿐 아닙니다. 살 뺀다고 밀가루를 끊기로 다짐을 한 지 하루도 안 되서 맛있는 빵 집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던 경우가 제게도 종종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너무 잘 알고 계셨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의 우상과 풍조에 마음이 흔들릴 것이라는 걸, 그들의 목이 곧으며, 죄의 유혹 앞에 연약하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따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노래를 만들어 부르게 하라고 하십니다. 그 노래는 이스라엘이 후에 하나님을 저버릴 때에 증인의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배교는 풍요로움에서 온다는 것, 가나안에 들어가 그 땅의 소산물을 먹으며, 배부르게 되고, 점점 다른 신을 섬기며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리게 될 것이라고. 신앙이 뒤틀리고 왜곡되는 것이 물질적 풍요에 있다는 것을 알게 하라고 노래를 만들어 부르게 하십니다.

아마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예고하신 말씀에 동의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자신들은 결코 그럴 일이 없을 것이라고, 베드로가 주님을 결코 배반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듯이 마음속에는 ‘우린 결코 그럴 일이 없을 거야’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후에 하나님의 말씀이 현실이 되었을 때 그들은 이 노래를 부름으로 주께서 왜 그 옛날 모세에게 이 노래를 만들어 부르게 하셨는지를 깨닫고, 다시 하나님 앞에 마음을 모으게 되고, 물질의 풍요가 주는 인생의 덫을 주의할 것입니다.

노래를 가르치게 하신 하나님은 23절에서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하라는 격려를 주십니다. 여호수아가 마음에 가질 부담감을 잘 알고 있는 계신 것입니다. 위대한 모세의 뒤를 잇는 후계자라면 당연히 부감감에 짓눌릴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호수아가 아닌 당신이 백성을 인도할 것이니 담대하라고, 그와 함께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이 약속은 마치 우리 인생을 향해 주시는 약속으로 들립니다.

24절에는 모세가 율법을 책으로 기록한 후 언약궤를 메는 레위인들에게 언약궤 곁에 율법책을 둘 것을 명합니다. 이 율법책은 아마 신명기에 기록된 규례와 법도와 명령들을 지칭하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그것을 십계명 돌판이 들어 있는 언약궤 곁에 두라는 것은 그 명령들이 언약궤와 같은 권위를 지닌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그 명령들은 십게명과 더불어 살펴야 한다는 의미도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언약궤를 메고 앞서 행하면 이스라엘이 그 뒤를 따르듯 그 명령들도 이스라엘을 인도하는 지침들이 된다는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 특별히 마지막 부분, ‘언약궤 곁에 두라’는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시고, 우리 곁에 놓인 것은 무엇인지, 하나님의 말씀 곁에 우리는 머물고 있는지 기도 중에 우리를 성찰하는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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