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2일 월요일 QT


12지파를 위해 일일이 축복하며 기도한 모세는 33장 26-29절에 찬양으로 기도를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같은 축복을 얻은 민족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도우시려고 내려오셨고, 이스라엘의 아래에는 그의 팔이 계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돕는 방패요 영광의 칼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자리에 여러분과 우리의 교회를 대입하여 읽어보십시오. 오늘의 말씀만큼 큰 힘과 위로를 주는 구절도 흔치 않습니다. 누가 행복한 사람입니까? 하나님께 구원을 받은 백성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여러분, 여러분 모두가 행복한 사람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4장은 모세의 죽음을 기록하였습니다.

느보산 비스가 봉우리에 오른 모세는 이스라엘이 밟게 될 약속의 땅을 하나님이 일러주시는 대로 북에서 남까지 동에서 서까지 모두 바라봅니다. 모세는 눈으로만 보고 발로는 밟지 못한다는 것을 다시 일러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끝으로 숨을 거두게 됩니다. 그의 시신은 모압땅 뱃브올 골짜기 어딘가에 묻혔으나 그가 묻힌 곳을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 5절이라고 생각합니다.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모세의 마지막 행동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었음을 성경기자는 기록합니다. 그런데 모세는 그의 기력도 시력도 쇠하지도 흐리지도 않았다고 기록되었던 것을 보면,

모세는 질병으로 죽은 것도, 노환으로 죽은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이 딤후 4:7에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라고 고백한 장면과도 어우러지는 죽음의 장면입니다. 죽는 순간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았던 모세의 모습을 이렇게 보여줍니다.

그런데 우리말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원어상으로는 ‘그가 매장하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지 않고 ‘그가 매장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가 매장되었다고 쓰였다면 다른 사람들에 의해 매장되었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그가 매장하였다’고 기록된 히브리어 원문상의 의미로 따져보면,

‘하나님이 모세를 매정한 것’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에 올 때도 이 세상을 떠날 때도 모세는 하나님께 신세지고 간 존재입니다. 그래서인지 모세의 무덤을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단지 죽었다는 소식만 전해진 것입니다.

이 부분을 깊이 생각해보면, 신명기의 신앙은 하나님의 위대한 종 모세를 영웅화하지 않습니다. 그를 기리고 추앙하지 않습니다. 무덤조차 알 수 없게 하여 성지로 꾸며놓고 순례하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신명기는 신실한 종 모세를 세우고 지도하시고 이끄시며 그를 통해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리고 경배합니다. 죽은 자를 숭배하는 것이 일반적 세상의 풍습이라면 이스라엘 신앙은 죽은 자를 숭배하지 않습니다. 모세도, 다윗도, 사도 바울도, 예수님도 그 무덤은 빈 무덤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람을 찬양하지 않고 사람을 높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높이는 신앙이 바로 신명기의 신앙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그리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삶도 모세와 같이 신실하게 쓰임받기를 죽음의 순간에서까지 그렇게 쓰임받으시는 주님의 종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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