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에 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죽음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 삶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죽음은 생명을 끝내지만 말을 끝내는 것은 아니다.” 마치 우리 ‘생명은 끝나도 말씀은 계속된다’는 말처럼 들렸습니다.

오늘 모세의 마지막 모습을 보면 안타까움이 느껴지지만, 그 절망스러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이 계승되어지는 소망적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모세는 평생 가나안 땅을 바라보며 살아간 사람입니다. 애굽에서 태어나 바로의 궁에서 자랐지만, 미디안 광야로 도망쳐야만 했습니다. 거기서 장인의 양떼를 돌보며 40여년을 지낸 어느 날 하나님은 불타는 떨기나무 가운데에서 모세와 만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을 향한 여정에 올랐습니다. 이리저리 불평하고, 방황하고, 때론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겠다며 모세를 죽이고 다른 지도자를 세우겠다며 반란을 꾀하기도 했던 백성들을 끝가지 포기하지 않고 때론 그들을 위해 목숨을 걸고 중보하면서 자그마치 40년간을 광야에서 보냈습니다.

그리고 천신만고 끝에 모세는 가나안 땅이 내다보이는 느보산 비스가 봉우리에 오르게 됩니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가나안, 꿈에도 그리던 약속의 땅을 바라보는 모세의 마음은 어떤 말로도 형용할 수 없는 감격으로 가득 찼을 것입니다.

그런데 너무나 안타깝게도 모세의 행보는 거기까지였습니다. 모세는 약속의 땅을 바라보기만 했을 뿐, 한 발짝도 밟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직도 눈이 빛을 잃지 않았고, 기력도 정정했으나(7절)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충실하게 당신의 뜻을 따라 백성들을 인도했던 모세에게 ‘너는 가나안 땅을 밟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백성들 앞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웠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한번이라도 밟아보도록 하셔도 좋지 않으셨을까요?

그냥 밟아만 보고 죽게 하셨을 수도 있었을 텐데, 주님은 너무 단호하셨습니다. 결국 모세는 가나안 땅을 바라보면서 눈을 감아야 했습니다. 더군다나 그의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모르게 하셨습니다. 약속만 바라보고 달려온 인생이었는데 너무도 안타까워 보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새로운 세대의 약속을 위해 거기서 멈추어야 했습니다. 모세도 마음  한켠에 서운함이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자신의 역할은 거기까지였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어쩌면 그 땅을 바라보게 하신 것만으로도 감사했을 것입니다. 그 땅에서 새롭게 일하실 하나님의 역사가 그의 눈에는 보였을 것이고, 기쁘게 눈을 감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모세의 삶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약속을 성취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약속을 성취하여 가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인간의 역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가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깨달을 때, 내 눈앞에서 약속이 성취되지 못한다 하여도 아쉬워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하나님의 역사 안에 있을 뿐입니다. 우리의 가정도, 교회도, 그리고 우리 한 사람의 인생도 그분의 역사 안에 있습니다. 그분은 길든 짧든, 크든 작든 우리의 인생을 통해 당신의 약속을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우리의 할 일은 그분이 이루실 일을 신뢰하며 오늘도 우리 자신의 ‘믿음의 걸음을 걷는 것’입니다. 오늘도, 기도하고, 오늘도 예배하고, 오늘도 순종하고, 오늘도 사랑하며 살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이루는 징검다리가 될 것이고, 그분의 역사는 계속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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