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337장

오늘 시편에서 기도자는 절절한 심경으로 하나님께 탄원합니다.

고난의 한 가운데 있을 때에는 마치 하나님께서 침묵하고 계시고, 나의 상황에 대해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믿음이 깊은 사람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닐 것입니다. 자신의 상황이 절박한만큼 하나님의 침묵하심도 깊다고 느끼게 됩니다. 그런 마음을 누가 헤아리겠습니까? 그런데도 악한 자들은 억압과 괴롭힘을 멈추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자비란 눈꼽만큼도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기도자가 이렇게 깊이 탄식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아무 것도 하시지 않는 것처럼 느낀다고 해서 그가 불신앙의 자리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와 같은 절박한 순간에도 탄원이라도 드리게 되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 신뢰가 없으면 보통의 사람들은 기도할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서 어떻게 극한의 상황에서 기도할 생각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탄식과 부르짖음이 크다고 해도 그에게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악인은 그렇지 않습니다. 4절에 보니 악인은 ‘세상에 하나님이 없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여기니 그들의 삶에 기도가 있을 리 만무합니다. 하나님을 경험할 턱이 없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자랑하는 것은 결국 자기들의 마음의 욕심이며, 자기 자신을 의지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스스로 자기는 흔들리지 않는다고 착각합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으니 그 입에는 저주와 잔해, 거짓, 포악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하는 짓이란 가난한 자들, 힘이 약한 이들을 덮치고 억압하고 빼앗습니다.

기도자는 자신의 삶의 문제를 뒤로 잠시 미루고 악인들에게 억압당하는 가난한 이들을 위해 기도를 드리기 시작합니다.

가난한 자를 괴롭히는 악인들의 팔을 꺾어달라고 간청합니다. 악한 자의 악을 더 이상 찾아낼 수 없을 때까지 찾아서 벌하여 달라고 기도합니다. 불쌍한 자들의 소원을 들어주시고, 다시는 그 땅에 고아와 과부를 억압하는 자들이 다니지 못하게 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10편을 읽을 때 자신의 문제를 놓고 기도하다가 타인의 곤고함과 아픔에 눈을 돌리는 이 기도자의 기도의 시선을 따라가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다보면 어느덧 우리의 삶의 문제가 좀 더 객관적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고,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나의 문제가 크고 무겁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타인의 문제를 놓고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놀라운 은총의 경험을 하게 되시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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