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6일 금요일 QT


요즘 우리가 읽는 시편들이 모두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는 표제가 붙어 있습니다. 120-134편이 모두 그렇게 한 주제로 묶여 있습니다.

그런데 그 형태가 120-121편은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과정이고, 122편은 예루살렘 도착, 123-133편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그리고 134편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집으로 돌아가기 전의 형태를 띠고 있다고 합니다.

즉 120-134편의 순례자의 노래는 집에서 성전으로 그리고 성전에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순례자의 발걸음을 암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순례자들은 왜 성전을 찾아 왔을까요?

그것은 새로운 힘과 소망을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순례자들은 성전에서 놀라운 치유와 은총을 경험합니다. 하나님은 순례자들을 실족하지 않게 하시고,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면서 당신의 백성들을 돌보십니다(시121편). 그래서 순례자들은, 믿음의 백성들은 그 소망을 품고 성전에 오늘도 다시 올라갑니다.

그렇게 자기 백성들을 돌보시는 하나님은 우리가 넘어지고, 믿음에서 실패하여  ‘깊은 곳에서’ 부르짖을 때에도 응답하십니다. 마치 요나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다시스로 가다가 바다에 던져져 물고기 뱃속에서 즉 ‘깊은 곳에서’기도하였을 때 그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을 기억하듯 순례자들은 주의 속죄의 은총을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하며 성전에 올라갑니다.

‘나 곧 내 영혼은 여호와를 기다리며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는도다’ 시인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는데, 순례자들은 주님의 어떤 말씀을 바라며 올라갔을까요? 아마 간음한 현장에서 붙잡혀 끌려온 여인에게 하신 말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는 말씀처럼, 자비로운 속죄의 말씀을 기대하고 올라가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 속죄의 말씀이 주님의 입에서 나오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리는 마음보다 더 절실하지 않았을까요? ‘그러니 이스라엘이여! 믿음의 사람들이여! 주님에게는 풍성한 속량이 있으니 그 은혜를 바라고 그분에게 올라가는 걸음을 멈추지 마십시오’라고 하나님 앞으로 초대하는 시편인 듯 느껴집니다.

그런데 그 풍성하신 속량의 하나님을 향해 나아갈 때 어떤 마음이 필요할까요? 교만하지 아니하고, 오만하지 않은 마음과 눈으로, 젖뗀 아이가 어머니 품에 자기를 온전히 의지하듯이 하나님의 은혜만을 바라며 겸허한 마음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물론 모든 처분을 주님께 맡기는 마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은 비단 속량을 바라는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성전으로 향하는 모든 사람, 구하고 바랄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모든 성도들에게도 필요한 마음가짐입니다.

그런데 속죄의 선언도, 축복의 말씀도 하나님은 제사장들을 통해 백성들에게, 순레자들에게 전하십니다. 그래서 성전으로 올라가는 노래의 마지막 시편인 134편에서는 ‘여호와의 모든 종들’을 향해 주님을 송축하라고, 찬양하라고 노래합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은 제사장들에게, 그리고 그들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영원히 복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속죄의 은총과 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날들 가운데 바라고 구하는 겸허한 마음을 언제나 품고 살아가기를, 성전을 떠나 일상의 삶 속에서도 그렇게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오늘의 시편들에 녹아 있습니다. 이 시편의 마음을 우리도 꼭 마음에 담아 살아가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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