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9일 월요일 QT


오늘 시편은 이스라엘의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을 신앙의 관점에서 노래한 시편입니다. 먼저 시인은 하나님의 성전 뜰에 있는 백성들을 향해 말씀합니다.

“여호와의 종들이여 하나님을 찬양하시오, 그분은 선하시고 그 이름은 아름다우시니 그분을 찬양하시오.”

하나님은 우리에게 찬양을 받으시기를 바라십니다.

어제 읽은 고라자손의 시편 48편에서도 주님이 성전에서 하시는 일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찬양을 받으셨고, 둘째는 이스라엘을 다스리셨습니다. 시편은 하나님이 찬양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임을 항상 강조하여 선언하십니다.

찬양, 즉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 그분이 저와 여러분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이 찬양은 어디에서 시작되는 것일까요? 4절부터 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역사적 사건들에서 발견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삶 한가운데 찾아오셔서 그들을 만나주시고, 이끄시고 건지시고 도우신 그 경험들을 하나하나 찾아내어 다시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13절에 주의 이름이 영원함과 주를 기억함이 대대에 이를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찬양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될까?에 대한 힌트가 여기에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이 나에게, 우리에게 행하신 일들을 기억하는 것에서 찬양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하나님을 찬양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찾아오셔서 만나주시고 이끄시고 돌보시는 것입니다. 그 경험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 그분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일입니다.

이 시편을 읽으면서 지난 7년을 잠깐 돌아봤습니다. 우리 공동체의 관점에서 이 시편을 읽을 때 한 구절 한 구절에서 우리의 지난날의 일들이 상기되어 떠오르실 것입니다. 길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길을 내시는 하나님, 홀로인 줄 알았으나 주님이 함께 하셨고 함께 동행할 이들도 주셨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몸에도 주님의 보호하심과 이끄심이 새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하나님을 찬양할 이유를 갖고 있고, 우리의 찬양드림이 마땅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하신 일을 기억하고 사느냐입니다. 시인은 주님을 기억함이 대대로 계속될 것이라고 노래했습니다. 대대로 기억되기 위해서는 대대로 알려주어야 합니다. 대대로 가르쳐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가고자 하는 성도들과 그 가정과 교회에 분명 하나님은 대대로 동행하실 것입니다.

5절 ‘내가 알거니와’라는 말이 있는데, 히브리어 원문 그대로 해석을 하면 ‘진실로 내가, 내가 압니다’ 라는 의미입니다. 너무 잘 알고 있다는 고백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오직 유일하신 한 분이시며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이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분은 이 어려운 재앙적 상황에서도 우리를 돌보시고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변호하시고 위로하시는 분이십니다. 오늘도 그 입술에 찬양이 있는 여러분 모두에게 위대하신 주님의 돌보심과 도우심이 함께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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