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일 수요일 QT


오늘 시편은 자신의 역사를 돌아보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신앙은 본질적으로 기억과 기대가 바탕을 이룹니다. 9절까지는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찬양이지만, 10절부터 구체적 역사 속에 이스라엘을 도우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의 돌보심을 기억해내고 있습니다. 사실 누구나 미래를 예측할 수가 없기에 미래는 설레임과 동시에 불안감을 주게 됩니다.

불안감이 가시화되거나 증가할 때 신앙은 더욱 기억에 기대게 됩니다. 그때도 그러하셨던 것처럼, 지금도 그렇게 하여 주시기를 과거의 기억에 의존하여 오늘의 소망을 구하게 됩니다.

136편의 시인은 그와 같은 기대감을 가지고 과거의 기억을 소환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출애굽의 기억, 광야시절의 기억, 가나안 정복 과정에서 승리하게 하신 기억들을 통해 오늘 다시 하나님의 도우심을 소망하고 있습니다. 그 소망이 간절하게 표현되는 문구가 있습니다.

바로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는 말씀입니다. 모든 구절마다 이 문구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마치 앞부분을 누가 선창하여 노래하면 뒷부분을 회중이 불렀을 법한 구성입니다.

‘그 인자하심’은 무엇을 말할까요? 인자하심에 대한 고백은 시편뿐 아니라 신구약 성경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는 말입니다. 히브리어 ‘헤쎄드’라는 단어로도 많이 알려진 말입니다.

하나님의 성품 중 가장 중요한 성품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 ‘헤쎄드’입니다. 우리 말로는 인자하심으로 가장 많이 번역되었으나, 신실함이나 변함없이 지속되는 사랑을 나타낼 때에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한결같은 사랑, 상황이나 조건에 따라 시시각각 바뀌는 사랑이 아니라, 언약에 기초하여 언제나 그 언약의 정신에 따라 베풀어지는 변함없는 사랑을 ‘헤쎄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고백을 매 구절마다 고백했다는 것은 그 변함없이 베풀어졌던 사랑이 오늘 이시간, 이 자리에서도 베풀어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을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소망은 이스라엘 삶에, 그리고 시인의 삶에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정말 소망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은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여겨지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여전히 ‘헤쎄드’의 사랑이심을 믿습니다. 그 사랑이 영원할 것이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우리에게도, 그리고 우리의 다음 세대에도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은 당신의 백성들을 향해 계속 베풀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오늘도 하나님만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하나님께 감사를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헤쎄드의 하나님이 우리가 찬양할 유일한 이유인 것을 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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