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일 목요일 QT


오늘 시편은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이들이 불렀던 슬픔의 노래입니다. 바벨론 여러 강변에 앉아서 울었다는 말은 아마 안식일마다 그들이 포로로 잡힌 바벨론의 강가를 찾아가 무너진 예루살렘과 성전을 기억하며 슬픔을 나누었던 것 같습니다.

이 시편을 읽으면서 느껴지는 감정들이 있습니다.

자신들의 처지에 대한 깊은 수치와 절망, 자신들을 망하게 한 이들에 대한 원망과 저주의 마음입니다. 나라 잃고 붙잡혀온 처량한 신세인 자신들에게 바벨론 사람들은 깊은 수치심을 안겨주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던 수금으로, 자기들 앞에서 연주하며 노래 부르라고 조롱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수금을 버드나무에 걸어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던 악기와 노래를 그들의 즐거움을 위해 연주하고 부를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깊은 수치심과 절망이 그들을 사로잡게 됩니다.

그리고 5절과 6절에 이렇게 다짐합니다. ‘만약 내가 예루살렘을 잊어버린다면 연주하던 내 손은 말라비틀어지게 되고(새번역), 노래하던 내 혀는 입천장에 붙어버리게 될 것이다’. 수치심과 절망이 깊은 만큼 예루살렘과 성전을 기억하는 마음 또한 커집니다. 또한 자신들의 예루살렘이 무너지는 날에 ‘기초까지 헐어버리라’고 조롱하던 에돔과 자신들을 멸망시킨 바벨론을 향한 저주가 표현되어 있습니다. 바벨론의 아이들을 바위에 메어치는 이들이 복이 있을 것이라고 심한 저주도 서슴지 않습니다.

그러나 맺힌 한이 큰 만큼 하나님을 의지하고자 하는 마음도 커 가게 됩니다.

본문에는 표현은 안 되어 있지만, 이 시편에는 원망과 절망, 억울함을 토하는 탄식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시온을 기억하고 울고 있는 그들 마음에, 예루살렘을 잊지 않겠노라 다짐하는 그들 마음에 하나님을 향한 소망의 싹이 담겨 있습니다.

비록 절망하고 저주하지만, 시온을 기억하며 우는 그 마음은 자신들의 죄를 성찰하는 과정인 것이라고 봅니다. 예루살렘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은 다시 하나님과 그분의 가르침을 기억하겠다는 또 다른 표현이라 여겨집니다. 비록 절망하고 저주도 하지만, 하나님 안에서 고백하는 그 과정은 탄식하는 이의 마음을 성찰하게 하여 새로운 소망으로 인도하는 다리가 될 것입니다.

누구나 괴로움을 만나면 자연스레 먼저 절망하고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시온을 기억하듯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마음에 두고 기도하게 되면 자기를 보는 눈이 떠지게 됩니다.

이 시편은 바로 그 자기 성찰의 길로 가는 과정, 진실한 회개에 이르게 하는 마음의 여정을 표현하고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기의 현실, 자신의 존재의 자리를 보는 자가 결국 주님 안에서 새로운 소망을 만나게 됩니다.

신32장 모세의 노래 뒷부분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39.이제는 나 곧 내가 그인 줄 알라 나 외에는 신이 없도다 나는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며 상하게도 하며 낫게도 하나니 내 손에서 능히 빼앗을 자가 없도다 40.이는 내가 하늘을 향하여 내 손을 들고 말하기를 내가 영원히 살리라 하였노라”

우리도 환란 중에 이 시편의 고백으로 기도하며, 모세의 노래를 통해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구원되심을 다시 한 번 되새기는 시간으로 삼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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