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탄식의 기도를 드리는 다윗의 심정은 굉장히 아프고 괴로웠던 것으로 보입니다. 자신보다 힘이 더 강한 타인, 원수, 미워하는 자들에게서 받는 억울한 일들, 고통, 위협, 조롱까지. 다윗은 견디기 힘든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이 괴로움이 언제 끝날지 알 수가 없습니다.

너무나 힘이 들어서 “언제까지 나를 잊으실 생각이십니까? 언제까지 외면하실 것입니까? 내 영혼이 아픔을 언제까지 견뎌야 합니까? 언제까지 괴로움을 당하고, 내 앞에서 의기양양한 원수의 꼴을 언제까지 보고만 있어야 합니까?”라는 탄식을 가득 하나님께 쏟아냅니다.

내면의 고통이 너무 심하다는 것을 시를 읽는 우리도 느낄 수 있을 정도입니다. 오죽하면 하나님이 얼굴을 숨기신다고까지 말할까요? 이런 고통과 아픔을 경험해보신 분들이 계시다면, 다윗의 탄식 한 마디 한 마디가 모두 공감되실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의 탄식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자신을 괴롭히는 타인에게 대한 원망보다 하나님에 대한 서운한 마음이 더 깊어 보입니다. 믿음의 사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다윗이었는데 그가 하나님께 도움을 얻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잊히고 버림받았다고까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듯한  상황이 다윗에게는 더 고통스러워 보입니다. 그래서 3절에 이렇게 기도합니다.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는 직역을 하면 ‘제발 저를 보아 주십시오’라는 간절한 청원입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보지 않으시고 다른 데를 보고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여기 나를 좀 봐주세요. 제발...’ 이런 뉘앙스입니다. ‘하나님이 보시면 문제가 해결될텐데 보시지를 않으시니 이것을 어쩌나...’하는 안타까움이 깊이 배어 있는 하소연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자신을 돌아보지 않으시고 결국 사망의 자리에 이르게 되면 원수들이 ‘내가 그를 이겼다’고 자랑하고 뻐기게 될 것이 뻔한데 그 모습은 생각하기도 싫은 것입니다. 자신의 상황이 이토록 절박한데 하나님은 왜 응답하시지 않는지 그것이 너무 괴로운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렇게 서운함을 표현하다가 기도의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지혜롭게 간구합니다.

“나는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하였사오니 나의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여전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점이 다윗의 놀라운 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놓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는 그 의미가 번역되어 있지 않지만, 원문에는 ‘그러나’라는 말이 들어 있습니다. 다윗은 “그러나 나는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의지합니다”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 말이 이 탄식기도의 전환점입니다.

“너무 아프고, 괴롭고, 억울하고 서운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나는’ 주님의 사랑을 여전히 의지합니다. 신뢰합니다.”라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건드리는 기도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도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도 ‘그러나 나는’으로 기도의 마무리를 장식하고 하나님을 의지해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결국 주님이 지켜주시고, 손을 들어주시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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