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6일 목요일 QT


오늘 시편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모든 대상들이 시인의 노래에 의해 소집되고 있습니다.

먼저 시인은 하늘에서 높은 곳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말하며, 가장 먼저 천상의 존재인 천사들과 천상의 군대들을 향해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요청합니다. 그리고 해와 달과 별들을 향해서, 하늘의 하늘을 향해서도 찬양하라고 요청합니다. 그들이 찬양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그 모든 것들을 지으셨기 때문이라고 5절에서 노래합니다.

시인은 창조주로서의 하나님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창조되었다는 믿음에서 우리의 신앙이 시작됩니다. 창세기가 첫 성경인 이유도 아마 그것일 것입니다. 창조주로서의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이 없이 믿음의 삶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세상 만물뿐 아니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창조하신 분이심을 우리도 노래하기를 바랍니다.

또한 하늘의 존재만이 아니라 바다의 존재들과 땅위의 존재들, 그리고 여러 다양한 자연현상들 바람, 우박, 눈, 나무들에게까지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노래합니다.

그런데 시인의 말투가 찬양하라고 요청하고 있지만, 이미 시인은 자연 만물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질서있게 운행하고 있음을 알고 있고, 그 운행함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세상 만물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움직이면서 그 자체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이제 남은 존재는 사람들입니다. 오직 사람들만이 하나님의 섭리를 벗어나기도 하고, 그 뜻에 불순종하기도 합니다. 사람들까지 하나님을 온전히 찬양한다면, 그리고 찬양하는 삶으로 사람들의 인생이 채워진다면 그곳이 바로 에덴이고, 천국일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왕들을 시작으로 아이들까지 찬양의 자리로 초청하고 있습니다.

찬양은 신앙인의 존재양식입니다. 신앙인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통로가 바로 찬양입니다. 그 찬양에서 터져나오는 고백이 바로 감사입니다. 그래서 찬양과 감사는 항상 동전의 양면처럼 같이 흘러갑니다.

그런데 우리가 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시편 146-150편의 삶의 자리는 고난이라는 자리였다는 것입니다.

시편의 시인은 고난의 자리에서 ‘찬양’하기로 마음을 확정한 사람입니다. 이 찬양은 현실도피가 아닙니다. 구원에 대한 강력한 희망입니다. 결국 말씀의 자리를 걸으면서 찬양하는 삶에 반드시 하나님의 구원하심이 임한다는 믿음으로 오늘 찬양하는 시인의 마음이 우리의 마음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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