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7일 금요일 QT


오늘은 마지막 시편인지라 두 편을 읽었습니다.

149편과 150편은 같은 할렐루야 시편이지만, 분위기가 조금 다릅니다. 150편은 마치 오케스트라가 온갖 악기들을 연주하며 피날레를 웅장하게 마무리하는 듯한 느낌입니다. 마지막 절에 호흡이 있는 자는 모두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선언으로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이유, 그것은 우리에게 호흡이 있기 때문에, 호흡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기에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149편은 사연 있는 자의 할렐루야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사연은 공동체가 공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동시에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강하게 하셔서 두 날 가진 검으로 주변 나라들에게 복수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이방민족들에게 벌을 내리고 그들의 귀인과 왕들을 사롭잡아 쇠고랑을 채우게 해 달라고 염원하며 노래합니다. 그들에게 판결한 대로 형벌을 시행하기를 소망합니다. 그렇게 되는 것이 성도들의 영광이라고 노래합니다.

149편을 노래한 시인은 어제도 말씀드렸지만, 그가 거하는 삶의 자리가 평안하지 않습니다. 내용상으로 볼 때 포로로 잡혀간 이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소망하면서 불렀던 찬양인 것 같습니다.

자신들의 나라를 망하게 하고 백성들을 죽이고 왕과 고관들을 사로잡아 바벨론으로 끌어 온 것처럼 자기들의 손으로 자신들을 망하게 한 모든 민족에게 되갚아 주시기를 간절하게 탄원하고 있습니다. 복수하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그들에게 갚아주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편을 읽어가면서 느끼는 것은, 이렇듯 복수를 원하고 있는 상처 깊은 시인이 하나님을 향하여서는 찬양하기로 마음을 정했다는 사실입니다.

평안 중에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고난 중에 찬양을 드리기로 정했다는 것이 신앙의 진정성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게다가 하나님 앞에서 원망을 쏟아내기 보다는 오히려 마음을 겸허하게 하자며 다른 이들을 향해 찬양의 자리로 초청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겸손한 사람에게 구원의 관을 씌워 주시기에 그분 앞에서는 마음을 자고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노래합니다. 바벨론 포로로 잡혀온 이유가 하나님 앞에서 겸허함을 잃고 불순종한 그 교만한 삶 때문임을 뒤늦게나마 깨달은 것입니다.

거기서 그들은 하나님 앞에 회개하여 겸허한 마음, 심령의 가난함을 되찾은 것입니다.

그들의 실패와 패망은 하나님 앞에서 회복의 길을 찾는 도우미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실패의 자리, 고난의 자리에서 지금 노래하고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누구나 다 실패의 자리에서 다시 겸허함을 입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위대한 것입니다. 저도 여러분도 실패는 또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늘 그 자리에서 진정 찾아야 할 모습이 무엇인지 오늘 시편에서 답을 찾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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