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시편은 여호와의 종 다윗의 시, 성가대 지휘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라고 되어 있습니다. 대개 하나님을 찬양하는 고백이 먼저 나오는데 이 시편의 첫 머리에서는 독특하게도 악인들의 삶에 드러나는 특징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시인이 대면하는 악인들은 그 마음 속에 죄가 깊숙이 차지하고 있어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모습이 전혀 없습니다. 악인들 스스로 말하기를 ‘나의 죄악은 드러나지 않고 죄의 댓가도 받지 않을 것이다’라고 자만합니다. 말하는 것도 악하고 거짓되어 지혜롭고 선한 일과는 아예 단절하고 살아가는 상태입니다.

그들은 잠자리에 누워서까지 악한 일을 생각하고, 죄악의 길에 자신을 맡기고 악을 거절하지도 않습니다. 이것이 이 시편의 주인공 다윗을 둘러싼 상황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악인들의 위세가 크고 그 악한 뿌리가 깊어서 다윗은 하나님을 찬양하기에 앞서 그들의 악의 모습을 먼저 그려내고 있는 듯 보입니다.

이와 같이 악한 현실이 도처에 뻗어 있어서 신실하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이들이 올바르게 살아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어리석은 일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다윗이 그런 환경에 처해 있었던 것입니다.

만일 그런 악인들이 세속의 힘 있는 자리에 있어서 부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그 아래에서 일하는 신앙인들은 참으로 깊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들과 한통속이 될 수는 없어도, 때로 그들의 부당하 혹은 불의한 지시를 따라야 하는 입장이라면, 일을 하면서도 자괴감에 젖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 놓여 있던 다윗은 어떻게 그 시간들을 보냈을까요?

다윗은 악인들이 득세하는 세상에서 눈을 잠시 돌려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세상을 등지고 싶어서가 아니라, 악인들이 득세하는 현실만을 보면 그 속에서 희망을 찾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눈을 들고, 마음을 잠시 하늘로 향합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인자하심을 찬양하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악인들의 죄와 악한 행실이 아주 커 보이지만, 그보다 더한 하나님의 사랑이 하늘에 비치고 그분의 신실하심이 공중에 사무쳐 있음을 깨닫습니다. 그러다보니 하나님의 의가 든든한 산과 같고 그분의 심판은 깊은 바다와 같다는 사실도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바다와 같다는 말은 그분의 심판은 깊고 크다는 의미인데 결국 악인들에게 큰 심판이 덮칠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 깨달음에 이르게 되니, 하나님 안에서 희망을 찾아내었던 것입니다. 9절에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봅니다’라는 고백이 그런 마음에서 나온 고백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도 하나님 안에서 빛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소망을 발견해야 합니다. 진정한 소망은 그분에게서 시작됩니다.

그후 11절에서 다윗은 악인들이 자신에게 이르지 못하게 해 달라고 간구하고, 12절에서는 악인들의 넘어짐을 선언합니다. 악인의 패배와 넘어짐은 1절에 표현되었던, 악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교만에 대한 결과입니다.

결국 악은 심판을 받고 의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 머물게 됩니다. 악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며 의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기에 하나님을 신뢰하는 이의 승리를 노래하는 시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이 승리의 시편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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