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5장 1~15절 11월 9일 수요일
요셉이 감정을 누르지 못하여 사람들을 모두 나가라고 소리칩니다. 형제들과만 남은 상태에서 요셉은 크게 울면서 자신의 정체를 드러냅니다. 자신을 요셉이라고 말하는 애굽총리의 이야기에 형제들은 모두 놀라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들이 노예로 팔아넘긴 요셉이 살아있는데다, 터무니없이 애굽의 총리의 자리에 있으리라고는 정말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제서야 형제들은 자신들에게 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옛날 어린 요셉이 자랑스럽게 떠들어댔던 꿈 이야기가 허황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미리 알려주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어찌되었든 그들은 요셉 앞에 죄인일 수밖에 없었으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요셉은 너무 놀라 당황해하는 형들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나는 당신들이 애굽에 판 요셉입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걱정하지도 자책하지도 마십시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형님들보다 앞서 나를 이곳에 보내신 것입니다. 그러니 실제 나를 이곳에 보낸 것은 형님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앞으로도 5년 동안 밭을 갈 수 없는 흉년이 있을 것이니 속히 가서 아버지를 모시고 오십시오. 여기서 제가 형님들과 식구들을 보살펴드리겠습니다.”
요셉의 고백은 형들을 놀라게 하였습니다. 자신들을 탓하지도 책망하지도 않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섭리와 구원의 계획으로 고백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제3자의 시선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를 당한 당사자의 입으로 하는 고백이라 더욱 놀랍고 위대합니다.
어떤 이들은 다른 사람들의 삶에서 일어나는 고통스러운 일들에 쉽게 판단하고 신앙적인 해석을 가하는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자신의 삶에 그와 같은 일들이 일어나면 견디기 어려울 것입니다. 요셉과 같은 피해 당사자의 고백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고백에서 무언가 큰 을림을 받게 됩니다. 다른 사람의 입이 아닌 요셉이 직접 하는 고백이기 때문에 그 고백이 진실성을 갖는 것입니다.
자신의 삶에 일어난 어떠한 일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하나님의 구원계획이라는 창문을 통해 바라본다는 것은 오직 신앙인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 고백을 요셉이 자기 입으로 했다는 것은 이미 형들을 용서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요셉의 용서는 형들과 그의 가족들의 생명을 살렸습니다.
직접적인 잘못을 행한 형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고 비난하지도 않는 요셉은 마치 베드로를 용서한 예수님과 같아 보입니다.
사실 요셉을 배워가고 예수님을 닮아간다고 하는 것이 모든 잘못에 대해, 죄에 대해 무조건적인 용서를 해야 한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단지 우리의 선택이 요셉이나 주님처럼 생명을 살리는 길로 가는가에 대해 늘 돌아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교회와 우리 각자가 그 길을 늘 선택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