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는 전도서를 읽습니다. 전도서의 저자는 1:1절에서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으로 소개되고 있으므로 흔히 솔로몬이 쓴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끝까지 자신을 솔로몬으로 소개하지 않습니다. ‘다윗의 아들’ 전도자로만 소개합니다. 그 말인즉슨 저자는 자기 자신보다 ‘다윗’이 더 각인되게 하고자 그리 말한 것입니다.

다윗이 누구입니까? 가장 크고 강대한 나라를 성취한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입니다. 그런데 다윗을 떠올릴 때 사람들은 무엇을 가장 먼저 떠올릴까요?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려고 했던 사람,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 드러나기를 바란 사람,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 살았던 믿음의 사람입니다. 어떻게 보면, 1절 ‘다윗의 아들’이란 말에서 전도자가 이야기하려는 것이 무엇인지가 숨겨져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도자로 번역된 단어는 ‘코헬렛’이라는 말입니다. 그 말을 그대로 풀면 ‘모으는 자’입니다.

사람들을 모아 전하고자 하는 말을 하는 자라는 의미로 이해하여 헬라어에서는 ‘대중연설가’로 번역했고, 마틴 루터는 이 단어를 ‘설교자’로 번역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모으는 자’의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혜를 모으는 자’의 의미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전도서는 인생을 먼저 살아본 사람이 앞으로 인생을 살아갈 시간이 많이 남은 자들에게 주는 충고의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한편에서는 세상살이에 대한 비관적인 뉘앙스가 나타나고, 다른 한편에서는 세상살이의 현실에 대해 근원적인 대안을 제시하려고 하는 의도도 나타납니다. 오늘 그 첫 가르침이 읽은 말씀 안에 있습니다.

그 첫 번째가 ‘헛되다’는 말입니다. ‘헛되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헤벨’입니다.

‘숨, 바람, 수증기’등의 의미입니다. 잡을래야 잡을 수 없는 것, 언젠가는 사라지는 것입니다. 숨을 잡을 수 없죠. 잡고 오래도록 살려고 해도 숨은 언젠가 멈춥니다.

바람은 잡을 수 있습니까? 그것을 잡으려고 애써봐야 시간낭비일 뿐입니다. 애초부터 잡을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헛됩니다.’ 3절에서 전도자는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라고 묻습니다. ‘해 아래’란 이 세상을 말하며 우리의 유한한 인생을 의미합니다. 해 아래 세상에서의 ‘무의미함, 덧없음’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해 위’는 어떻습니까? 해 아래가 있다면 해 위의 세상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해 아래는 현상이고, 그림자입니다. 본질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해 아래만 생각한다면 우리는 본질을 놓치고 그림자만 쫓는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오늘 본문 뒤에 나오는 말씀이지만, 14절 후반에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도자는 무엇이 옳은 것이고 무엇이 그른 것인지 알기 위해 사람들의 지혜를 모으려고 애썼고, 누구보다도 많은 지혜를 얻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조차 헛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의 지혜가 많으니 번민도 그만큼 많아지더라는 것입니다.

해 아래의 지혜가 전도자에게 도움이 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전도자는 해 아래에만 집중하고 해 아래만 보지 말기를 우리들에게 전하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하신 말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리라”눈에 보이는 현상이 아닌 그 보이는 것들을 존재하게 하는 본질을 보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림자가 아닌 실체, 창조된 것들이 아닌 창조하신 분을 보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헛된 삶에 이르지 않게 됩니다. 그래야 진정 가치있고 아름다운 인생, 진정 복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임을 전도자는 강조하려고 합니다. 세상 중심으로 살지 말고, 해 아래만 보지 말고, 전도서를 읽으면서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려는 결단이 다시 한 번 우리에게 일어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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