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전도서 11장은 1-2절을 중심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새번역에서는 1-2절을 경제적 관점에서 번역하여 “돈이 있으면 무역에 투자하여라. 여러 날 뒤에 너는 이윤을 남길 것이다”라고 번역하였습니다.

‘떡’이라는 단어가 히브리어 ‘레헴’입니다. ‘빵’이죠. 베들레헴의 ‘레헴’입니다. 베들레헴은 ‘떡집’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가 다른 성경 어디에서도 ‘돈’이라는 의미로 사용된 곳은 없습니다.

그리고 ‘도로 찾으리라’고 변역된 구절은 ‘도로’라는 의미의 단어가 원문에는 없기에 ‘찾으리라’ 혹은 ‘찾게 될 것이다’로 번역하는 것이 맞습니다. 게다가 이 단어에는 이윤을 남긴다는 개념은 아예 들어가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1-2절은 경제적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이 옳지 않아 보입니다.

그래서 대개의 학자들은 자선의 관점에서 1-2절을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합니다. 게다가 그동안 전도자는 돈을 많이 벌려고 사는 삶을 헛되다고 가르쳐 왔던 사람입니다. 자신이 받은 몫에 만족하고 아내와 일상을 즐거워하며 살라고 가르쳐 왔던 사람인데 지금 1-2절을 투자의 가르침으로 해석하면 전도자의 그동안의 가르침이 어긋나게 됩니다.

결국 이 말씀은 자비, 나눔, 선행 등의 관점에서 해석해야 할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전도자는 왜 떡을 물 위에 던지라고 가르치고 있을까요? 2절에서 말씀하듯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알지 못하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재앙까지 만나게 된다면 삶이 크게 흔들릴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물 위에 우리의 떡을 던지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떡은 생명의 원천입니다. 그것 없이는 아무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바탕이 되는 것이 떡, 음식입니다. 그런데 왜 그것을 던져야 할까요? 던지는 것은 베푸는 것입니다. 그럼 왜 베풀어야 합니까? 생명을 나누기 위함입니다. 나만 살려고 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함께, 더불어 살기 위해 던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도 같이 살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생명을 나누는 것입니다. 그것을 나누고자 수백 년 전 미국에서 배를 타고 멀고 먼 조선 땅으로 선교사들이 찾아온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의 수많은 사람들이 진정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들이 던진 떡이 언제 누구에게 어떻게 돌아가게 될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것이 이 민족을 살려 여기까지 이르게 한 것입니다.

적은 수의 선교사들이 던진 떡이 수십 수백 수천만을 살렸습니다. 너무도 엄청난 일입니다. 그리고 떡을 던진 분들은 이 민족의 성도들 가슴에 영원히 살아있고, 하나님 나라의 별들이 되셨으니 그분들은 던진 떡을 찾은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런데 떡을 던지는 데에는 꼭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언젠가 그 떡을 찾게 되리라는 믿음, 그 떡을 통해 누군가는 생명을 얻으리라는 믿음, 그것이 있을 때 우리는 우리의 떡을 던질 수 있습니다. 베푼다는 것, 나눈다는 것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당신의 죽음으로 교회가 세워지고 수없이 많은 생명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리라는 믿음을 가지지 않으셨다면 십자가의 죽음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러분 삶에서 떡을 계속 던지시기 바랍니다. 계속 손을 펴서 나누시고 베푸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을 통해 반드시 생명의 열매가 맺힐 것입니다. 세상의 것들을 많이 소유하기보다 하나님 백성으로 복되게 존재하는 길에 늘 서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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