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627  목  왕하4:18-37  429장

엘리사가 말한 대로 아이가 태어나 이 가정에는 한없이 큰 기쁨이 주어졌습니다. 아이는 잘 자랐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이가 아버지에게 머리가 아프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종에게 아이를 엄마에게 데려가라 말합니다.

아이를 업고 종이 엄마에게 갔는데 아이는 엄마의 무릎에 앉아 있다가 그 품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엄마는 하나님의 사람의 침대에 아이를 눕히고는 남편에게 엘리사에게 갈 것인니 종 한명과 나귀를 달라 부탁합니다. 초하루도, 안식일도 아닌데 왜 엘리사를 찾아가느냐 남편이 묻지만 걱정 말라고 하며 종과 함께 나귀를 타고 달립니다.

엘리사가 있는 갈멜산까지 쉬지 않고 달려갑니다. 엘리사가 멀리서 여인을 보고 그녀와 남편 그리고 아이가 잘 있는지를 묻습니다. 여인은 다 괜찮다는 대답을 하는데, 엘리사를 만나고서는 그 발을 안습니다. 발을 꽉 붙든 것입니다.

게사히가 떼놓으려고 하자 엘리사가 여인이 괴로움 중에 있으니 가만 두라고 합니다. 아직 하나님께서 여인이 왜 괴로워하는지 말씀해 주시지 않았다고 말하자, 여인이 그제서야 엘리사에게 탄식합니다. 여인은 내가 언제 아들을 달라고 했습니까? 나를 속이지 말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라고 탄식을 쏟아내었습니다.

엘리사는 아이에게 큰 일이 있는 줄 직감하고 떠날 채비를 하라고 말하면서, 누굴 만나더라도 인사하지 말고 대답도 하지 말고 가서 아이의 얼굴에 자신의 지팡이를 놓아두라고 명합니다. 게하시가 먼저 가서 엘리사가 시키는 대로 하였으나 아이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습니다.

게하시가 아이가 아무런 반응이 없다고 엘리사에게 알립니다. 집에 도착한 후 아이가 있는 방으로 간 후 문을 닫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아이 입에 입을, 눈에 눈을, 손에 손을 댔습니다. 아이 위에 몸을 뻗어 누웠을 때 아이의 몸이 따뜻해지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게하시에게 수넴 여인을 불러오라 하여 여인이 오자, 아이를 여인에게로 돌려줍니다. 아이가 살아난 것입니다.

본문은 아이가 무슨 병으로 죽었는지, 아버지는 도대체 그 시간에 무엇을 했는지 하나도 기록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직 아이의 엄마와 엘리사, 게하시의 행동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이를 살려낸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본문이 가장 중요하게 집중하고 있는 것은 여인의 행동입니다.

18절에 아이가 추수꾼들에게 나아갔다고 기록한 것으로 보아 추수기라는 걸 짐작할 수 있고, 추수기에는 대부분의 남자들이 밭으로 나가 생활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이의 죽음에 대해 들녘에 나간 아버지는 아무런 소식을 듣지 못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인이 나귀와 종을 달라고 부탁했을 때에도 일손이 빠져나가는 문제라 아이의 아빠가 왜 엘리사에게 지금 가려느냐며 핀잔하는 식으로 얘기한 것입니다. 그때 여인이 ‘평안을 비나이다’라고 대답했죠. 우리 식으로 얘기하면 ‘별일 아닙니다.’라는 대답을 한 것입니다.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상황은 너무 심각한 상태였습니다. 여인은 왜 남편에게 아이의 죽음을 알리지 않았을까요? 여인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라면 아이를 다시 살릴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여인의 믿음은 절대적인 매달림입니다. 불신앙의 시대에 수넴 이라는 마을에 있었던 한 여인의 믿음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응답하셨는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처음 엘리사를 환대하고 후에는 위해 방을 준비하는 모습 속에서 여인의 믿음은 위기 때에만 발휘된 믿음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평상시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고 살아갔던 여인이 위기의 때에는 더욱 그 믿음의 위력을 드러내주고 있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일상의 삶에서의 믿음의 모습입니다. 그 일상에서의 믿음의 힘은 위기의 때를 만나면 큰 힘을 발휘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그와 같은 귀한 믿음을 갖게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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