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은 하나님의 은혜로 사울에 이어 왕위에 올랐습니다. 사울의 위협과 길고 긴 도망자로서의 삶을 견뎌낸 다윗은 결국 왕위에 올랐습니다. 왕위에 오른 다윗이 처음 하려고 한 일은 법궤를 옮기려는 것이었습니다. 법궤가 어디에 있길래 다윗은 그것을 예루살렘으로 옮기려고 했을까요?

이스라엘이 왕정국가가 되기 전 실로에 법궤가 있었고 그곳의 제사장이 엘리였습니다. 그런데 그의 아들들은 하나님께 드릴 제사를 훼손하고 제물을 자기 마음대로 가져가며 하나님께 악을 행하였습니다.

엘리는 그의 아들들의 악행을 알고도 징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차에 블레셋과의 전쟁이 발생하였는데,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이 법궤를 부적처럼 사용하려고 전쟁터로 가지고 갔습니다. 그러나 삶이 거룩함에서 떠나고 하나님을 멸시하는 태도로 일관한 그들이 법궤를 가져간다고 해서 전쟁에 승리할 수는 없었습니다.

전쟁의 승리는 하나님께 있는 것이지 법궤에 잇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엘리 제사장의 아들들은 전쟁 중에 죽고 법궤는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법궤를 빼앗아간 블레셋에 난리가 났습니다. 법궤를 보관한 신전에서 그들의 신상이 부러지고, 법궤가 옮겨진 도시마다 백성들 중에 질병이 생겼습니다. 블레셋에서는 법궤의 존재가 큰 고민거리였습니다. 그래서 벧세메스로 보냈습니다.

벧세메스 사람들은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만지지 말아야 할 법궤를 들여다보고 말았습니다. 수십 명이 죽게 되자 벧세메스 사람들이 기럇여아림으로 법궤를 옮겨 아비나답의 집에 보관하였습니다.

그는 아들 엘리아살을 구별하여 궤를 지키도록 했습니다. 그곳에서 20년간 보관되어 있었지만, 그동안 통치자였던 사울은 법궤를 모셔올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왕이 된 다윗이 그것을 옮겨올 생각을 품은 것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이 기뻐하실만한 계획을 세운 것입니다.

다윗은 천부장, 백부장 등의 지휘관들과 레위 사람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백성들도 다윗의 계획을 기뻐하였습니다. 드디어 다윗을 위시하여 많은 백성들이 아비나답의 집으로 가서 법궤를 수레에 실어 옮기기 시작하였습니다. 웃사와 아히오가 그 책임자였고, 다윗은 기뻐서 춤을 추며 노래하였습니다.

그런데 법궤가 기돈의 타작마당에 도착할 무렵 갑자기 소들이 뛰었습니다. 법궤가 수레에서 흔들리는 것을 본 웃사가 손을 대어 법궤를 만졌습니다. 민4:15에 의하면 법궤를 운반할 때에는 고핫 자손들이 와서 채에 나무를 넣어 어깨에 메서 운반하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성물은 함부로 만져서는 안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운반에 관한 규례를 어겼고 웃사는 만져서는 안 되는 것을 만졌습니다.

웃사는 결국 그 자리에서 죽었습니다.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사람은 다윗이었습니다. 자신은 좋은 의도를 가지고 추진한 일인데 하나님이 정하신 대로 옮기지 않았던 것이 웃사의 죽음을 불러온듯하여 법궤를 가져오는 것이 두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더 이상 법궤를 운반할 용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근처 오벧에돔의 집으로 법궤를 옮겨 보관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런 일들을 모두 알고 있을 오벧에돔은 다윗이 자신의 집으로 법궤를 가져왔을 때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요?

법궤가 가는 블레셋의 도시에는 전염병 등의 재앙이 일어나고 법궤를 본 벧세메스 사람들은 모두 죽었고, 법궤를 만진 웃사도 죽었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 오벧에돔과 그의 가족들은 법궤를 보관하게 된 것을 기뻐했을까요? 두렵지 않았을까요?

자칫하면 가족 모두가 화를 입을 수 있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오벧에돔의 마음을 짓눌렀을 테니 말입니다. 더군다나 오벧에돔은 그 이름의 뜻에서 알 수 잇듯 애초에 유대인이 아닙니다. ‘오베드’는 ‘종’이란 뜻이고 에돔은 에서의 민족입니다. ‘에돔의 종’ 이것이 오벧에돔의 뜻입니다.

우리가 죄인이었으나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처럼 이방인이었던 오벧에돔이 어떤 연유에서인지 유대의 하나님을 섬기고 살아가고 있었고, 오늘 이런 부담스러운 책임이 주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오벧에돔은 법궤를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런 부담감을 안은 채 법궤를 보관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여기에 오벧에돔의 복이 시작된 것입니다. 다윗도 옮기기 두려워한 것을 오벧에돔이 부담감을 이겨내고 밭아두기로 정한 것입니다.

오벧에돔은 율법을 거스르지 않고 정성껏 보관했습니다. 오벧에돔의 집에 보관되어 있던 3개월 동안 하나님의 복이 그의 집에 임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축복이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복은 오벧에돔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에 임하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역대상 26장에는 오벧에돔의 아들들이 받은 축복에 대해 기록한 것입니다. 이것은 오벧에돔이 하나님의 법궤를 어떻게 대했는지에 대한 평가와 열매에 대한 기록인 것입니다. 그걸 본 다윗이 다시 법궤를 옮길 용기를 얻게 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벧에돔이 법궤를 밭아 보관한 것이 법궤가 예루살렘으로 오게 되는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모두 다윗같을 수도 없고, 사무엘 같을 수도 없습니다. 때로는 오벧에돔처럼 신실하고 부담감이 있는 중에도 헌신하는 성도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교회도 든든히 세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법궤를 모신다는 의미는 무엇일가요?

첫째 법궤는 하나님의 말씀과 임재를 상징하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또한 법궤가 보관되어 있던 언약 백성이 하나님께 예배드린 성막은 오늘날 주님의 교회를 예표합니다.

즉 법궤를 모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의 중심에 모시는 삶을 의미하며, 동시에 주님의 교회를 섬기는 성도들의 헌신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주님의 교회를 섬기는 일에는 언제나 영적, 물질적, 육신적 부담이 있게 됩니다. 영적으로든 물질적으로든 육신적으로든 아무 부담없이 하나님을 예배하고 교회를 사랑하는 일이 가능하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런 부담은 늘 따라오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 부담조차 기꺼운 마음으로 감당하고자 할 때 우리는 오벧에돔의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무거운 부담을 떠안고 하나님의 법궤를 모시기로 정한 오밷에돔을 하나님은 결코 잊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집과 그의 소유 모두 축복하셨습니다.    

우리가 오벧에돔과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교회를 사랑하고 섬길 수 있기를 바라며, 오벧에돔에게 주신 것처럼 우리뿐만 아니라 우리의 자녀와 소유에도 복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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