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13장 1~13절, 7월 19일 금요일
240719 금 왕하 13:1-13 423장
유다 왕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 23년에 북왕국 이스라엘에는 예후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아하스는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을 행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이스라엘을 향해 징계를 내리셨는데 아람 왕 하사엘과 그의 아들 벤하닷을 통해 고통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그 고통이 심하여 여호아하스가 하나님께 부르짖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간구를 들으시고 징계를 거두셨습니다.
아람 왕이 이스라엘을 너무나 혹독하게 다루는 것을 보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바른 길로 돌아오게 하려고 징계를 하시긴 하였으나 고통 받는 당신의 백성을 보시며 마음이 아프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부모의 마음과 닮아 있습니다. 하나님의 징계가 거두어 지고 아람의 군대도 돌아가서 이스라엘이 평안을 되찾기는 하였으나 아람 왕은 여호아하스의 군대에 기병 50명과 전차 열대, 그리고 보병 1만 명만을 남겨두고 떠났습니다. 그 외에는 모두 죽인 것입니다.
그렇게 철저한 모욕을 당하고도 여호아하스 왕은 여전히 우상을 떨쳐내지는 못하였습니다. 게다가 아세라 목상도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오랜 우상숭배의 습성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이스라엘의 왕들의 모습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사람들이 몸에 벤 습관을 버리기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 모습은 요즘 시대에도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현직 대통령도 후보시절에 손에 왕(王)자를 쓰고 tv토론회에 나오지 않았습니까? 미신이나 우상을 섬기는 습성은 그렇게 몸에 베이면 끊어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생명을 얻는 길에 옛 사람의 습성과 우상숭배의 삶을 그대로 안고 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그렇게 두 마음으로 섬길 수도 없는 일이고, 그렇게 섬기는 것을 하나님이 인정하시지도 않으십니다. 여호아하스는 그렇게 온전하게 회개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그의 뒤를 이어 요아스가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유다왕 요아스와 이름이 같은 인물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요아스 왕은 유다의 요아스와는 완전히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한 길로 갔습니다.
그런데 11절을 읽어보면 뒷 문장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그 가운데 행하였더라.”
‘그 가운데 행하였다’는 표현의 문자적인 의미는 ‘그 죄 안에서 걸어갔다’는 말입니다. 요아스는 그 죄 안에 거하여 살아간 왕이었다는 말입니다. 죄 안에 사는 자와 은혜 안에 사는 자가 다릅니다. 우상 안에 사는 자와 하나님 안에 사는 자가 다릅니다.
죄 안에서 죄와 더불어 살아간 사람이 요아스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왕들은 이렇게 하나님을 떠나 죄와 더불어 살아가며 나라를 다스렸기에 시시각각 멸망으로 치닫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멸망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아직 멸망이 오지 않았다고 해서 안심할 일이 아닙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안에 머물고 있는지 죄 가운데 살고 있는지 깨달아야 합니다. 이 땅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믿는 자들이 깨어나도록, 참 지도자와 거짓 지도자를 분별할 수 있는 믿음의 눈과 귀가 성도들에게 열려야 하는데, 성도들도 욕망에 갇혀 있으면 그것을 보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늘 경계하며 깨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