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619  수  왕하1:1-8  340장

오늘부터 열왕기하를 읽습니다. 아합이 죽은 후 그의 아들 아하시야가 왕이 되었습니다. 어느날 아하시야가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크게 다쳤습니다. 그런데 아하시야는 자기의 병이 나을 수 있는지 에그론으로 가서 바알세붑에게 물어보라며 사람을 보냈습니다.

에그론은 블레셋의 성읍입니다. 즉 블레셋 민족이 섬기는 우상에게 보낸 것인데, ‘바알’이란 말은 ‘주인’이란 뜻이고, ‘제붑’이란 말은 ‘파리’란 뜻입니다. ‘파리의 주인’이란 이름의 신입니다. 우리가 아는 더러운 곳에 사는 곤충 파리를 말합니다. 왜 블레셋 사람들은 파리를 신으로 여겼을까요?

여러분, 파리는 번식과 생명력이 좋은 곤충입니다. 군대 있을 때 길 건너편에 돼지 축사가 있었습니다. 그 집의 권사님이 군인교회를 나오셨는데, 심방을 가서 축사를 구경시켜 주셨는데 돼지가 꽤 많았어요. 냄새가 좀 독했습니다.

축사도 깨끗하지는 않았어요 보아하니 흑돼지도 있는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가까이 가봤는데 흑돼지가 아니라 돼지 몸에 온통 파리떼가 앉아 있었던 것입니다. 파리는 떼로 다니죠. 그런 걸 섬겼으니 블레셋사람들의 영적 수준이 어떠했겠습니까?

그런 파리 우상에게 아하시야가 자기 병이 나을지 물으러 간다는 것이 참으로 어이없는 일입니다.

더구나 ‘물어보다’는 말 ‘다라쉬’라는 단어는 ‘종종 방문하다’는 의미도 담겨 있는 단어입니다. 묻고 알아보고 조사하기 위해 종종 방문한다는 의미를 가진 단어를 사용한 것을 보니, 아하시야가 평소에도 ‘파리의 주인’에게 자주 묻곤 했다는 것을 드러내는 단어입니다. 너무 어리석은 짓입니다.

세상을 창조하고, 애굽에서 탈출시켜 땅을 허락하신 만군의 하나님이 계시고 그분이 주신 수준 높은 계명이 전해져 내려오건만 아하시야는 우상에 빠졌던 제 아비처럼 습관적으로 우상을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도 파리의 주인에게 물으러 보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당신의 사자를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사자는 엘리야에게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에그론의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 것이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고 전하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엘리야가 그 말씀을 가지고 갑니다. 그리고 아하시야가 보낸 자들에게 그 말씀을 전합니다. 아하시야는 그 말을 전한 사람의 생김새를 묻습니다. ‘털이 많고 허리에 가죽띠를 두르고 있었다’는 말에 그가 엘리야인줄 알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여기까지입니다.

병이 깊어 두려우니 아하시야는 파리의 주인에게 손을 벌립니다. 그 시대가 무지해서 그런 나약하고 어리석은 행동을 한 것일까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우리를 포함해서 인간은 참으로 나약한 존재입니다. 한계상황에 다다랐을 때 사람들은 무언가라도 붙잡고 의지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말기암 환자들에게 효험이 있다는 설이 퍼지자 환자들이 개의 회충약을 먹기도 했습니다. 지금 우리 대통령은 tv토론회에 나올 때 손에 한자로 王자를 써서 나왔습니다. 21세기 최첨단 을 달리는 대한민국에서도 여전히 무속과 우상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그걸 시키는 대로 할 만큼 그 양반은 무속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길들여진 습관입니다.

아하시야가 습관적으로 그렇게 물으러 다닐 만큼 빠져 있었던 것에 대해 결국 하나님은 그를 심판하셨습니다. 우상에 의지하는 것은 하나님이 가증히 여기시는 바입니다. 신앙인들 중에도 습관적으로 점을 보거나, 그냥 해오던 대로 궁합을 보고 사주를 보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사갈 때 손 없는 날 하는 분들이 여전히 있습니다.

그 행위를 하나님이 어떻게 보실까요? 우상에게 가서 경배하고 절하는 것만이 우상숭배가 아닙니다. 옛 습관을 벗어버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넣어야 합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잠겨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분별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우리의 삶에서 옛 습관을 버리는 결단의 귀한 시간이 오늘의 기도의 시간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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