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528  화  왕상22:1-12   200장

이스라엘과 아람 사이에 전쟁이 없이 3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아람의 벤하닷이 두 번이나 이스라엘을 침략하였다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큰 패배를 하고 목숨만 겨우 부지하였던 이후 계속 전쟁 없이 지낸 것입니다. 그러다가 아합이 신하들에게 아람에게 빼앗겼던 길르앗 라못을 되찾고 싶다는 뜻을 피력하였습니다.

벤하닷이 성읍을 넘겨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합은 자신들의 힘으로 빼앗긴 성읍을 되찾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들만의 힘으로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워서 유다 왕 여호사밧에게 함께 아람을 공격하자고 동맹 제의를 합니다.

서로 원수처럼 으르렁대던 이스라엘과 유다가 이런 동맹관계를 제안할 만큼 사이가 가까워진 것은 아합의 딸과 여호사밧이 정략결혼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여호사밧이 아합의 사위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사밧은 전쟁 전에 하나님께 뜻을 묻고자 했습니다.

과연 전쟁을 일으켜도 될 것인지, 전쟁을 하게 되면 승리할 것인지를 하나님께 묻고자 하였습니다. 여호사밧은 아합과 달리 하나님이 보시기에 다윗의 정직한 길로 행했던 왕이었습니다.

여호사밧은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알기에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합은 내키지 않았으나 나라 안의 선지자들을 소집합니다. 400 여명 가량이 아합 앞에 나왔습니다. 그러나 아합의 통치 아래에서 정직한 하나님의 예언자들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이세벨이 전에 수많은 예언자들을 죽였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합이 우상을 숭배하는 일에 몰두하였기에 신실한 예언자들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400여명이 불려왔지만,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400여명의 예언자들은 아람을 치러 올라가는 게 좋겠느냐고 묻는 아합의 질문에 하나님의 응답을 전하는데, 하나님께서 그 성을 아합의 손에 넘겨주실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400여명이 같은 예언을 하였지만, 실상 그들 모두 하나님의 영에 붙들린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즉 그들은 자기들 생각대로 대답한 것이지 하나님의 뜻을 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 예언을 들은 여호사밧은 주의 뜻을 물을만한 다른 예언자가 없냐고 아합에게 묻습니다. 여호사밧은 왜 다른 예언자가 있냐고 물었을까요? 400여명의 예언자들로는 부족했던 것일까요? 400여명의 예언자들이 아합에게 한 말은 원문의 표현대로 하면 이렇습니다.

“올라가십시오. 주께서 왕의 손에 주실 것입니다.”

우리말 번역에는 흐름상 집어넣었지만, 원문에는 ‘그 성을’이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여호사밧은 예언자들의 예언이 분명하게 말씀을 전하고 있지 않고 무언가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고 느낀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물을 만한 다른 예언자가 없냐고 물어본 것입니다.

그러자 아합이 미가야라는 예언자가 있긴 한데 자신에게 길한 예언은 하지 않고 흉한 예언만 하여 자신이 미워하는 예언자라고 말합니다. 여호사밧은 “왕은 예언자에 대해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라고 조언을 합니다.

그리하여 아합이 미가야를 부르러 사람을 보냈는데, 400여명의 예언자들은 계속 예언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그 중 시드기야라 하는 예언자는 자신이 만든 철 뿔을 가지고 나와 주님이 아합으로 하여금 그 철 뿔들로 아람을 파괴하게 하실 것이라고 예언을 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은 여기까지입니다. 아합은 하나님께 물을 생각이 없었으나 여호사밧으로 인해 예언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묻는 과정을 밟습니다. 그러나 그의 곁에 있는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영이 임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합이 듣고 싶은 예언을 해 줍니다. 아합도 신실하지 못하였고, 그가 부른 소위 하나님의 예언자들도 신실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 모두 자기 생각, 자기 이익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나마 여호사밧이 있어 다행이었습니다. 어둠 가운데 작은 빛만 있어도 길은 갈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어둔 세상에 여러분들이 작은 빛과 같이 길을 분별하고 제시할 수 있는 주의 일꾼들이 되시어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살아가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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