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531  금  왕상22:41-53  516장

이제 5월 마지막 날이고, 오늘 열왕기상 마지막 부분을 읽었습니다. 열왕기상은 여호사밧의 이야기로 끝을 내고 있습니다. 열왕기 기자는 여호사밧에 대해 몇 가지 이야기를 전합니다. 35세에 왕위에 오른 여호사밧은 25년간 유다를 통치했습니다. 여호사밧은 아버지 아사와 같이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행동하였다고 기록합니다.

여호사밧은 아버지 시대에 남아 있던 남창을 없애버렸습니다. 남색하는 일은 일상 속에 스며든 우상숭배적이고 비윤리적은 죄악을 없앤 것입니다. 여호사밧은 아버지 아사가 이루지 못한 부분까지 개혁을 이루어 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백성들의 삶에 스며든 우상적인 요소들을 제거하는 신앙개혁의 일환이었습니다. 물론 그의 개혁이 완벽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산당은 여전히 폐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해 백성들은 여전히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산당은 우상숭배의 잔존물이었으나 거기까지 개혁을 진행하지 못했던 것을 기록한 것입니다. 결국 여호사밧 시대에도 혼합주의적인 신앙은 잔존하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나마 신앙적으로는 많은 폐단을 개혁했지만, 정치적, 경제적 정책은 실수가 있었습니다. 먼저 여호사밧은 아합의 딸과 결혼하였다는 점에서 실수가 있었습니다. 물론 여호사밧만의 결정은 아니었겠지만, 우상숭배로 점철된 가문과 혼인을 맺는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이었는지를 당시 여호사밧은 헤아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아합 가문과의 결혼으로 인해 이스라엘과 유다는 전쟁이 없이 평화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장점보다는 폐단이 더 컸던 혼인이었습니다. 아합 가문과의 결혼이 후에 미쳐 올 후폭풍은 너무 끔찍한 것이었음을 당시엔 아무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48절에는 여호사밧이 배를 건조하고 오빌의 금을 구하러 갔던 유다의 배가 파선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여호사밧의 종교개혁이 미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인 번영을 우선시하다가 그 목적조차 이루지 못했다는 점을 보여주고 기록입니다.

그후 소식을 접한 이스라엘의 아하시야 왕이 여호사밧에게 오빌의 금을 구하러 함께 가자는 제안을 합니다. 이스라엘과 함께 배를 건조하고 무역을 진행하면 좋은 이점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사밧이 거절합니다.

앞선 배의 파선한 일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것이 분명합니다. 우상숭배하고 하나님을 멀리 하는 이들과의 관계를 가까이 하지 않으려는 태도였습니다.

아합과 동맹하여 벌인 전쟁과 배가 파선한 일들을 통해 여호사밧이 무언가 깨닫게 된 것입니다. 실수를 통해 귀한 배움을 얻은 여호사밧은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는 지혜가 있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여호사밧은 상당히 지혜롭고 겸손한 왕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아합의 뒤를 이은 아하시야가 2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나 아버지와 같은 악한 길로 행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22장은 3명의 왕들에 대한 평가로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아합과 여호사밧과 아하시야입니다. 이 세 명의 왕들 중 여호사밧이 가장 정직한 왕이었습니다. 비록 완전하지는 못했지만, 여호사밧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려고 애쓴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선한 이름을 지금까지 남기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우리의 이름이 귀하게 남겨질 수 있도록 믿음과 삶에 정결함을 늘 유지하게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등록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