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7일 목요일 QT


32장 16-25절까지의 예레미야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실질적인 응답은 오늘 말씀에 드러나 있습니다.

어제의 말씀은 갈대아인들을 통한 유다 심판의 이유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라면 오늘 말씀은 예레미야가 고민과 당혹감을 담아 드린 기도에 대한 답변인 것입니다. 신실한 일꾼들을 향해서는 그 마음의 괴로움과 의구심까지 밝혀주고 계시는 하나님의 세심한 모습이 드러나는 본문입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토지거래를 하게 하신 이유와 의미를 설명하고 계십니다. 징계와 책망만이 전부가 아님을 알리십니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유다 백성의 구원과 회복입니다. 그들이 지은 죄에 대해 책임을 물으신 후에는 그들을 다시 유다로 돌아오게 하시겠다는 약속을 확인시켜 주십니다.

38절에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며” 라고 하시는 말씀은 다시 돌아온 백성들과 새로운 언약을 맺으시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과의 언약 속으로 들어가는 이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가 있습니다. 39절에 자기들과 자기 후손의 복을 위해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시겠다고 하셨고, 40절에서는 그들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 그들을 떠나지 않겠다는 약속을 주십니다. 이 언약을 영원히 세우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 되면 결국 다시 평온한 일상생활의 회복이 주어질 것이 분명한 것입니다.

44절에서 언급한, 땅을 사고 팔게 되리라는 것은 회복이 반드시 오게 될 것에 대한 상징으로 주신 말씀입니다. 예레미야로 하여금 땅을 사게 하신 것도 그 뜻을 드러내시려는 의도였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오늘 말씀의 내용입니다. 이와 같은 회복에 관한 말씀은 한 두 번이 아니라 여러 해에 걸쳐 시간을 두고 계속 강조되어 왔고, 앞으로도 그런 말씀들을 또 접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읽으면서 예레미야의 입장에서 한 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유다는 바벨론 포로 생활을 70년 동안 겪어야 할 것임을 앞선 예언에서 하나님은 드러내셨습니다. 그렇다면 유다의 회복은 예레미야의 사후에나 있을 일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하나멜의 땅을 구입하여 얻는 이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땅을 구입해야 했던 예레미야로서는 다소 억울한 부분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주어지는 이익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값을 지불하여 밭을 구입하였습니다. 예레미야에게 있어서는 세상적인 이익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먼저였고, 하나님의 율법의 정신을 따라 기업 무를 자의 의무를 감당하는 것이 더 중요했던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자신의 재산과 자신의 삶이 사용된 것에 만족할 줄 아는 선지자였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매 순간 우리에게 이같은 요구를 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삶의 어느 한 순간 우리를 향해서도 이와 같은 하나님의 요청이 있을 때에 ‘아멘’ 할 수 있는 믿음의 기초를 쌓아야겠습니다.

그래도 어느 한 순간은 하나님께 우리도 복된 웃음을 안겨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살아오면서 많은 실망과 아픔을 드렸는데, 이후로도 그렇게 살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저와 여러분 모두 하나님께 기쁨을 더욱 드리는 삶을 살아가게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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