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9일 화요일 QT


에벳멜렉에 의해 구덩이에서 건져내어진 예레미야는 시위대 뜰 안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시드기야 왕이 예레미야를 성전 셋째 문으로 불렀습니다. 이곳이 어딘지는 모르지만, 왕만 통행할 수 있었던 곳이었을 것입니다. 시드기야는 다른 누구의 배석 없이 단 둘이서만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던 것입니다.

시드기야가 예레미야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보자, 예레미야는 모든 것을 말하고 나면 왕이 자신을 죽일 것이고, 자기의 말을 듣지도 않을 것이라 말합니다. 그러자 시드기야가 자신이 예레미야를 죽이지 않을 것이고, 신하들이 죽이도록 넘겨주지도 않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그러자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주신 예언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시드기야가 바벨론에 항복하면 도성은 불타지 않고 왕과 왕의 집안은 목숨을 구할 것이라는 사실을 전달하였습니다. 그러나 항복하지 않는다면 예루살렘 성은 바벨론 군대의 손에 넘어갈 것이고 불타 버릴 것이라고 경고하였습니다. 그러나 시드기야는 바벨론에게 항복하고 난 뒤에 바벨론이 자신을 이전에 바벨론에 투항한 유다 사람들에게 넘겨줄 것이고, 그러면 자신이 그 투항했던 유다 사람들에게 학대당하지 않겠냐며 두려움을 드러내었습니다.

예레미야의 예언에 따라 미리 항복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시드기야가 항복하기를 주저한 것에 대해 앙심을 품고 학대하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과 염려가 시드기야의 마음을 지배하고 가득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시드기야가 예레미야를 은밀히 만나 이후에 자신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알고자 했던 것입니다.

시드기야의 두려워하는 말에 예레미야는 그런 일이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항복하는 것만이 사는 길이며, 항복하지 않으면 모두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게 될 것이고 도성도 불에 타버릴 것이라고 재차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나 시드기야는 예레미야가 전한 말씀에 어떻게 하겠다는 대답은 없이 둘 사이의 대화가 다른 이들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당부하기만 합니다.

만약 둘의 만남을 알게 된 신하들이 ‘왕과 무슨 대화를 나누었느냐’고 묻게 되면 예레미야가 대답할 말까지 미리 준비해 두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둘 사이에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아무도 모르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여기까지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시드기야의 인간적인 고민과 두려움이 드러나 있습니다. 신하들에게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힘없는 왕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를 통해 재차 하나님의 예언과 말씀을 전해 듣고도 계속 고민하고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우유부단함은 시드기야에게 불행을 가져오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했을 때에는 이리저리 방황하고 흔들리고, 쉽사리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이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게 임한 후에는 속히 결단을 내렸어야 했습니다. 이런 모습은 신중함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불신앙의 모습일 뿐입니다.    

우리도 시시각각 선택의 순간들을 만나면 오래도록, 이랬다저랬다 하면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할 대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 분명해지게 되면 더 이상 고민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 뜻에 속히 순종하는 것이 복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그분의 뜻 앞에서 머뭇거리는 삶이 아니라, 그 뜻을 알게 되었을 때엔 즉시 그리고 바르게 응답하는 신앙인으로 사는 원미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등록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