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5일 월요일 QT


어느 날 군 지휘관들과 백성이 예레미야를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예레미야에게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우리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자신들이 마땅히 가야 할 길과 할 일을 보여주시기를 바라며 기도부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우리의 하나님’이라고 말하지 않고 예레미야에게 ‘당신의 하나님’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으로 보아 그 믿음이 온전하지 못한 사람들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41:17절에 보면 이들은 이미 애굽으로 길을 가려고 떠난 상태였습니다. 이미 길을 정한 뒤에 하나님의 뜻을 묻고 있습니다.

거꾸로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뜻을 정한 뒤에 하나님이 자기 뜻을 뒷받침해주고 지지해 주기를 바라는 경우입니다. 자기가 듣고 싶은 응답을 바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들이 지금도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 이루고 싶은 목적을 자신의 뜻대로 정해놓은 뒤 그것을 이루어 달라고 기도하는 이들 중에서 신실한 믿음을 얼만큼 발견할 수 있을까요?

믿음과 욕망이 혼재된 모습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늦게라도 하나님의 뜻을 묻고자 했고, 어떤 말씀을 주시든지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따르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열흘 후 하나님의 응답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습니다. 그들을 불러 모아 하나님의 응답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갈대아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애굽으로도 내려가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유다 땅에서 계속 살아가기로 한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세우고 헐지 않을 것이고, 모두 자기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만일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지 않고 애굽으로 내려간다면 그들이 두려워하는 칼과 기근, 전염병도 함께 갈 것이며 결국 애굽에서 죽음을 맞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예레미야는 그들이 하나님의 이같은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이미 애굽이 그들의 유일한 피난처라고 강하게 확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도 자기들의 뜻에 동의해 주기를 바라고 기도부탁을 하였던 것인데, 그들의 기대와 달리 하나님은 백성들이 유다에 남을 것을 원하시고 계셨습니다.

백성들의 기대와 하나님의 뜻이 부딪히고 있습니다. 이럴 때 과연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유익하겠습니까? 당연히 순종해야 한다고 말하겠지만, 솔직한 내면의 목소리는 큰 나라 애굽을 의지하라고 속삭일 것입니다. 이 사람들도 그랬습니다. 아무리 상황을 재어보아도 유다에 남는 것은 무모하고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답을 미리 정해놓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게 된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바벨론 왕을 두려워하지 말고 유다에 머물면 하나님께서 지키실 것이라고 하였으나 그들의 마음에는 예레미야의 말이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가진 생각, 경험, 판단에는 애굽으로 내려가야 살 확률이 컸기 때문입니다.

결국 형편 따라, 상황 따라, 경험 따라 선택하는 삶을 살아왔던 사람들은 결정적인 순간에도 그것들에 의해 판단하고 선택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믿음의 삶은 아닙니다. 믿음은 어찌되었든 말씀을 따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가까이 하는 삶, 말씀을 기억하는 삶, 주야로 묵상하는 삶이 중요한 것입니다. 거기서 우리의 형통의 길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