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5일 목요일 QT


오늘도 모압을 향한 심판 예언입니다. 예레미야는 26-27절에서 모압의 교만을 지적하고 계십니다.

예레미야 당시에 이 예언이 주어진 것은 모압이 유다와 마찬가지로 바벨론에 대항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모압은 하나님을 대적했을 뿐 아니라 패망한 이스라엘에 대하여 조롱을 일삼았습니다(27절). 머리를 흔들며 비아냥거리는 듯한 태도로 유다의 멸망을 조롱한 것을 두고 하나님은 모압에게도 큰 수치를 안겨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모압은 자신의 교만 때문에 결국 술 취하여 자기가 토한 것에 뒹구는 자처럼 조롱당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모압을 한마디로 표현하는 단어는 ‘교만’입니다. 성경은 사랑에 대해 가장 많은 말씀을 전하시지만, 교만에 대해서도 굉장히 많은 말씀을 남겼습니다. 그중에서도 잠16:5에 하나님은 마음이 교만한 자를 미워하신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복을 주시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교만한 자는 하나님의 싫어함의 대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 뒤 16:18은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고 말씀합니다. 패망의 선봉이란 말은 가장 먼저 망한다는 의미 아니겠습니까? 누구보다 가장 먼저 망하는 사람이 교만한 자입니다.

성도가 복을 받는 데 앞서야지 망하는 데 앞서 있어야 되겠습니까? 그러니 우리가 가장 주의하고 경계해야 할 삶의 태도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 교만한 자세입니다. 야고보서(4:6)와 베드로전서(5:5)에서는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고 물리치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싸우시는 대상이 된다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랑은 교만하지 아니한다고 말씀합니다. 결국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 곁에 설 자리가 없습니다.

어제도 말씀드렸지만 모압의 교만의 근거는 자신들이 가진 것들이 결국 자신들을 보호해 줄 것이라고 여기는데 있었습니다. 부와 힘이 많아지면 사람의 마음은 자연스레 그것들을 의지하고 자랑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래서 교만의 덫에 빠지지 않으려면 자신의 것을 흘려보내야 합니다.

가진 것들을 계속 쌓아가는 삶으로는 신앙의 자리에서 성장하기가 힘듭니다. 풍요가 자라는 만큼 신앙은 뒷걸음질 치기 쉽습니다. 계속 필요한 곳으로 필요한 사람에게로 주의 사랑의 통로가 되어 흘려보내야 풍요로 인해 영적인 축복을 잃어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게 됩니다.

내게 주어지는 것만을 복으로 여기면 안 됩니다. 다른 이에게 흘려보내는 것이 진정한 복이 된다는 마음을 항상 놓지 않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가 복을 흘려보내는 일에 더욱 열심인 성도와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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