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3일 금요일 QT


오늘 말씀도 바벨론을 향한 심판의 메시지입니다. 말씀의 대부분이 바벨론을 향한 재앙과 심판이 어떻게 주어지는지, 여호와의 칼을 맞아 죽는 이들이 누구인지 그리고 그 칼의 피해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런데 오늘 말씀의 핵심은 33-34절의 말씀이라 생각합니다. 33절에는 포로로 잡혀가서 바벨론에 살아야 했던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들의 실상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포로로 잡혀간 이들의 삶이 아주 곤고하고 힘들었습니다. 거기서 바벨론에 의해 학대를 당하고 살았습니다.

나라 잃은 백성들의 고단함을 한마디로 표현한 것이 ‘학대를 받는도다’입니다. 하나님께 신실하게 순종하지 않은 백성들의 삶은 고단함일 수밖에 없음을 이 구절은 증언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절에 반전이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의 구원자로 자처하셨습니다. 그분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이셨습니다. 그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들 때문에 싸우시기 시작하셨습니다. 누구와 싸우시는 것입니까? 당신의 백성들을 학대한 바벨론과 싸우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바벨론 주민들은 불안에 떨게 되고 그 땅에 사는 당신의 백성들에게는 평안을 주시겠다는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그러시면서 그 뒤 35절부터 바벨론에 임할 심판의 양상에 대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 말씀 34절 첫머리에 ‘그들의 구원자는 강하니’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들의 구원자’란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구원자가 되신다는 말씀입니다. ‘구원자’로 번역된 말이 ‘고알람’이란 단어인데 ‘그들의 고엘’이란 말입니다. 그렇다면 ‘고엘’은 무엇일까요?

룻기에 보면, 나오미의 기업을 되찾아주는 사람이 나옵니다. 누구입니까? 보아스입니다. 보아스는 나오미의 며느리 룻과 결혼하여 엘리멜렉의 가문과 그 기업을 되찾아주고 그 가문이 끊어지지 않도록 기업무를 자의 의무를 감당한 사람입니다.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을 ‘고엘’이라고 부릅니다.

‘고엘’은 친척의 재산, 생명을 지키고 보전케 할 책임과 의무를 지닙니다. 그리고 친척이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하게 되면 ‘고엘’인 사람은 죽은 친척을 대신하여 살해한 자를 벌할 책임도 갖게 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하나님은 당신을 일컬어 왜 ‘그들의 고엘’이라고 표현하신 것일까요? 첫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기업을 다시 회복하여 주실 것이라는 뜻이 있고, 그 다음으로는 이스라엘과 유다에게 큰 피해를 가한 바벨론을 처벌할 책임을 다하시겠다는 뜻을 전하시기 위해 스스로 ‘고엘’이라고 하신 것임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 옛날 이스라엘의 고엘이 되신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우리의 ‘고엘’로 오셨습니다.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의 죄값을 치르시고 우릴 살리시고 회복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젠 우리의 삶을 책임지십니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원한 ‘고엘’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린 더욱 하나님의 뜻에 겸손하게 순종하여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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