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욥은 단도직입적으로 하나님께 항변합니다.

지난 말씀들과는 어감이 다릅니다. 더 강하고 직설적입니다. 2절을 읽어보면, 자신을 정죄하지 말라고, 죄인 취급하지 말라고 항의합니다. 무슨 까닭으로 자신과 다투는지 알려달라고 외치고 있고, 8절에는 주님의 손으로 빚으셔 놓고 이제는 멸하려 하신다고 원망합니다.

9절에서는 자신을 티끌로 보내시려느냐며 항의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욥의 항변을 들어보면 욥이 하는 이야기가 욥의 친구들이 하는 이야기와 닮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6,7절에 보면 주님이 자신의 죄를 들추시고 찾으시려 하느냐고 따지면서 주님이 자신이 악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계시지 않느냐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계속 욥은 자신의 무죄함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욥이 자신의 무죄를 계속 주장하는 이유는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왜 자신에게 이같은 고난을 주느냐는 속마음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죄가 없으면 고난도 없다는 엘리바스나 빌닷의 주장과 근본적으로는 다를 바가 없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욥이나 엘리바스나 빌닷이 가지고 있는 신앙세계에서는 죄가 있으면 고난이 오고 죄가 없으면 고난도 없다는 생각이 확고합니다.

이들의 믿음을 뒤집어보면, 자신들이 하나님을 잘 경배하면 하나님은 자기들에게 복을 주셔야 한다는 의미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욥의 이야기는 이들과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이나 형통함이 없다면, 과연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라고 누군가가 던지는 질문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욥기는 욥의 이야기이면서 이스라엘의 이야기이고, 욥의 항변이면서 이스라엘의 항변이기도 합니다. 왜 하나님의 백성인 자신들에게 고난이 주어지게 되었는지, 왜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우시고는 견디기 힘든 고난을 허락하시는지 그들의 신앙으로는 하나님의 행하심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자신들보다 더 악한 이들도 많고 악한 민족들도 허다한데 왜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 이스라엘이 그리 오래도록 고난 속에 살아가야 하는지를 묻고 있기도 합니다. 자신보다 악한 이의 형통을 바라보게 되면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굉장한 혼돈을 겪기 마련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욥기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왜 더 악한 민족은 놔두시고 당신의 백성을 아프게 하시는 것입니까?’ 묻는 질문이기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만나는 고난을 통해 이 세상에서는 ‘의인은 축복, 악인은 멸망’의 공식이 언제나 들어맞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신실한 믿음을 가진 이들에게 축복이나 형통함이 늘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답을 기도 가운데 하나님께 드리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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