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11장 1~11절 10월 22일 금요일
욥의 말을 듣고 있던 소발이란 친구가 입을 열었습니다. 그는 욥의 이야기를 듣고 있을 수가 없어서 말을 하노라고 얘기합니다.
소발이 말한 2절을 새번역으로 보면, 좀 더 직설적입니다. “네가 하는 헛소리를 듣고서 어느 누가 잠잠할 수 있느냐? 말이면 다 말 인줄 아느냐?”며 욥을 강하게 책망하고 있습니다.
11장 전체는 욥을 향한 소발의 책망과 경고의 말입니다.
소발은 욥이 자신의 허물없음을 주장하는 것에 대해 우긴다고 여깁니다(4절). 그러면서 6절에서 “하나님께서 너로 하여금 너의 죄를 잊게 하여 주셨음을 알라”는 말을 합니다. 이 구절을 새번역은 “하나님이 내리시는 벌은 욥의 죄보다도 가볍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번역했습니다.
새번역의 번역으로 이해한다면 소발은 욥에게 “네가 당하는 고난이 네가 지은 죄보다 가볍다”고 여기라고 충고하는 것인데, 말 그대로라면 좀 과하다 싶습니다. 그러면서 “네가 하나님에 대해 얼마나 안다고 그런 말을 하느냐? 그 높이와 깊이를 헤아릴 수 있느냐?”면서 욥을 책망합니다.
소발이 욥을 이렇게 책망하는 이유는 욥이 자신의 무죄함을 주장하기 때문인데, 욥이 무죄라면 고난을 허락하신 하나님이 잘못 판단하신 것이 되어 버립니다. 욥의 무죄는 하나님의 실수, 하나님의 잘못이 되어 버리기 때문에, 하나님은 결코 실수하지 않으시고, 잘못 판단하시는 일이 없으니, 결국엔 욥에게 죄가 있다고 여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발이 흥분하여 욥을 강하게 책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소발이 보기에 욥의 무죄 주장은 위험한 행동입니다. 하나님을 완전하지 못한 분으로 전락시켜버리는 행동이라고 본 것입니다.
세 친구들은 욥과 하나님 사이에서 오직 하나님만을 두둔하고 있습니다. 성도로서, 그분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을 옹호하고 변호하는 것은 맞는 행동이지만, 지금은 욥의 잘잘못을 드러내기보다는 욥의 고통을 헤아리려는 노력이 필요한 때입니다. 세 친구들은 욥을 판단하려는 데에는 열정적인데 반해 욥의 아픔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습니다.
믿음이 좋다는 친구들이 하는 행동은 욥에게는 위로도 주지 못하며, 고통 속에서 다시 일어날 힘을 갖게 해 주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세 친구들의 믿음은 옳고 그름만을 판별하려고 하고, 기존에 가지고 있던 자신의 신앙관을 지키려고만 하고 있습니다.
욥기를 읽으면서 우리의 믿음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이 세 친구들의 믿음이 어떻게 비춰 보이십니까?
이 친구들에게는 우리가 바울을 통해 배운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는 깨달음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들의 믿음은 욥에게 소망이나 사랑의 메시지가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믿음이나 소망이나 사랑이 한데 어우러져 생명을 살리는 역사가 일어나도록 해야 하는데, 세 친구들의 믿음은 욥을 정죄하는 데만 작용하고 있으니 이런 믿음을 진정한 믿음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믿음은 타인을 정죄하고 판단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은 인간의 영혼을 하나님께로 향하도록 돕고, 그가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깨닫도록 하는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생명, 영혼, 삶을 살리는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그러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