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장 말씀에는 욥이 세 친구들에게 항변하는 이야기인 1-19절까지와 하나님을 향한 청원의 기도가 담긴 20-28절까지의 말씀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욥은 친구들을 향해 강한 말로 항의합니다. 욥은 친구들을 향해 마치 거짓말을 지어내는 자들과 같고, 쓸모없는 의사와도 같다는 말을 하면서 그들이 자신에게 해 준 충고가 얼마나 쓸모가 없는 것인지를 일러 줍니다. 욥은 그들이 차라리 입을 다물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친구들의 이야기는 욥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친구들은 욥의 고통을 헤아리려는 마음으로 그를 보지 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세 친구들은 욥의 고통을 헤아리려 하기보다는 ‘하나님이 왜 그에게 재앙을 주시게 된 것일까’의 관점에서 욥에게 일어난 일들을 바라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니 욥을 위한 위로보다는 욥에게서 죄가 있는가를 찾아보라는 말을 할 수박에 없엇던 것입니다. 욥이 느끼기에 친구들은 자신을 위로하기 보다는 하나님을 변호하려는 마음이 더 강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친구들이 하나님을 변호하려고 했던 말조차도 하나님을 위한 변명이 되지 못하였다고 말합니다(7-8절).

때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는 말이 오히려 우리의 짧은 식견과 신앙을 드러낼 뿐인 경우가 더 많습니다.

친구들에게서 아무런 위로도 얻지 못한 욥이 15절에서 친구들에게 “하나님이 자신을 죽이시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그러나 내 사정만은 그분께 아뢰어야하겠다”고 말하면서 직접 하나님께 얘기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욥은 자신이 죽는 한이 있더라도 꼭 하나님과 대면하기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하나님께 항변할 기회라도 얻는다면 오히려 그것이 자신에게는 구원을 얻는 길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악한 자는 감히 하나님 앞에 나설 수도 없겠지만, 자신은 무죄하니 하나님 앞에 나아가 당당히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욥은 하나님을 대면하기만 해도 만족하겠다는 마음으로 얘기합니다. 사실 욥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것 외에 없습니다. 그것이 자신이 죽는 일이 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 직접 말할 수 있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걸고라도 하나님을 만나 대화하기를 바라는 욥의 마음이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오늘 욥의 이야기를 읽고 있노라면, ‘나는 언제 이렇게 하나님을 갈망하고 살았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은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식어가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코로나가 좋은 핑계거리가 되기도 하지만, 우리 시대는 탈신앙의 모습이 확연합니다. 이런 탈신앙의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요? 원인이야 다양하겠지만, 우리 신앙인들이 진실하게 하나님을 갈망하며 살지 않은 것도 그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 중 하나가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라 생각합니다. 욥의 이런 강렬한 소망이 후에 하나님을 대면하는 기회를 갖게 되는 바탕이 되는 것처럼, 우리에게 하나님을 갈망하는 마음이 늘 새롭게 일어나 우리에게도 하나님을 목도하고 대면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갈망이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기회가 되기를, 오늘의 기도의 시간이 그 기회의 시간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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