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장은 욥의 이야기를 들은 빌닷이 두 번째로 욥을 향해 책망하는 말입니다.

빌닷은 “제발 눈치 좀 있어라. 언제까지 말할 셈이냐? 네가 말을 마쳐야 우리가 말할 것 아니냐?”는 말로 욥을 향해 책망을 이어갑니다. 빌닷은 욥에게 더 거친 말을 쏟아냅니다. 4절을 보면, “네가 그렇게 울분을 터뜨린다고 땅이 버림받을까 바위가 옮겨질까?”라고 욥의 탄식을 아무 소용없는 짓이라고 무시합니다.

그러면서 5절부터 하는 말을 보면, 빌닷은 욥이 자신들을 향해 거친 말을 쏟아내자 그를 악인에 비유하며 계속 악인의 쇠함과 멸망에 대해 이야기하며 욥을 더욱 몰아세웁니다. 7,8절을 보면, 욥에 대해 자기 성질을 못 이겨서 스스로 함정에 걸어 들어가는 어리석은 자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원망과 탄식을 스스로 그물에 빠지고 올가미에 걸려들게 하는 짓이라고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빌닷은 여전히 욥의 고통스러운 마음을 헤아리려고 하기 보다는 욥을 판단하고 심판하기에 정신이 없어 보입니다. 하나님은 악인을 징계하시고 멸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지금 욥이 징계당하는 이유도 그가 악한 일을 했기 때문이라고 단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욥의 호소가 마음에 와 닿지를 않는 것입니다. 빌닷에게는 욥의 탄식과 호소가 자기 죄를 깨닫지 못하는 자의 어리석은 울부짖음일 뿐인 것입니다. 그래서 악인의 종말이 어떻게 되는지를 상기시켜 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빌닷은 욥이 깨닫지 못하는 것 같다고 여겨 자꾸 욥을 질책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질책의 수준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12절을 보면 악인이 부유했어도 이제는 굶주려서 기운이 없고, 주변에 재앙이 도사리고 있다고 하고, 13절을 보면, 질병이 그의 피부를 삼킬 것이라고 말하고, 19절에서는 아예 “그의 백성 가운데 후손도, 후예도 없을 것이라고, 그의 집안에 남는 자가 없을 것이라고 독설을 날립니다.

21절에 악한 자의 집이 그렇게 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사는 곳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데, 이건 친구가 말할 수 있는 수준의 말이 아닙니다. 마치 원수라도 되는 듯한 사람이 입 밖으로 꺼내는 독설과 저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조언을 쓸모없다고 하고, 하나님께 원망을 토로한다고 친구에게 이같은 저주에 가까운 말을 쏟아 붓는 빌닷의 모습은 도저히 욥의 친구라고 할 수 없는 모습입니다.

사람 사이에는 그 관계가 가까울수록 말을 조심해서 건네야 합니다. 왜냐하면 잘 모르는 사람이 하는 서운한 말보다 가까운 관계인 사람이 하는 서운한 말이 더 오래 가슴에 상처로 남기 때문입니다. 자칫 말 한마디로 관계에 금이 가기도 하는 법이기에 관계가 좋을수록 더욱 말을 아끼는 것이 지혜롭습니다.

야고보서에 보면 혀는 불이요 그 사라는 것이 지옥불에서 난다(3:6)고 했고, 쉬지 않는 악이고 죽이는 독이 가득하다(3:8)고도 했습니다. 우리가 가진 입술과 혀가 사람을 살리고 세우고, 위로하기도 하지만 상처주고, 아프게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바라기는 지금껏 해 오신 것처럼 우리의 입술과 혀를 사용하여 일으키고 세우고 살리는 삶을 살아가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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