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장은 욥이 지난날을 회상하는 말씀입니다.

2절을 보면 욥은 자신의 지난날의 해복했던 때를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시던 때”라고 말합니다. 그때는 욥이 복을 누리던 때입니다. 하나님이 등불을 비춰 주셔서 어둠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던 때입니다. 자녀들도 함께 있었으며, 소유들도 풍성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던 성문이나 광장에 나가면 젊은이들이 자기를 보고 비켜섰고, 노인들은 인사를 했었습니다. 유지들도 하던 말을 멈추었고, 지도자들도 말소리를 죽였습니다. 자기 소문을 듣던 이들이 자기를 칭찬했습니다. 왜냐하면 욥이 도움을 구하는 빈민들을 도왔고, 고아를 살폈으며 과부들도, 망하던 자들도 욥의 도움을 얻었습니다.

늘 정의로웠고 공평했습니다. 가난한 자의 아버지와도 같았고, 사람들의 송사도 처리해 주었습니다. 악을 행하는 자들은 징벌했고, 그들에게서 희생당하는 자들을 구해주었습니다.

또한 21절 이하에 보면  사람들은 늘 자기의 이야기에 귀기울였고, 자기가 말을 하면 뒷말이 없었고, 자기가 한 말이 그들 위에 스며들었기에 언제나 사람들이 자기를 기다려주고 자기가 말할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자기가 무슨 말만 하면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마치 군대를 거느린 왕과 같이 사람들을 돌봐주고 위로해주었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18절을 보면, 욥은 늘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나는 내 보금자리에서 숨을 거두고 나의 날은 모래알 같이 많을 거야, 난 늘 의롭고 남에게 은혜를 베풀며 살았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건강하게 잘 살게 될 것이고 많은 날들을 장수하며 살게 될 거야. 뿌리 깊은 나무같이 사람들의 칭찬을 쉬임없이 받으며 내 기력은 쇠하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는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욥의 29장의 고백을 들어보면 욥은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지역에서는 마치 왕처럼 대우받고, 큰 부와 지위와 존경을 받으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보호하심 덕분이었음을 회상하고 그때를 그리워합니다.

그런데 이 말을 쭉 듣다보니, 욥이 지금은 하나님의 보호가 사라졌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존경받고, 부유하던 시절은 하나님의 보호가 있던 시절이요, 가난하고 병들고 재앙을 만난 지금은 그 보호가 사라진 시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욥이 하나님의 보호하심의 증거로써 부유함, 풍요로움, 권세와 지위, 존경, 건강 등을 근거로 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지금은 그런 것들이 다 사라졌으니 하나님이 자기 곁에 없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욥은 1장에서 사탄이 하나님께 말한 것처럼 자기에게 큰 부와 명예와 축복이 주어져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을 경외했던 욥의 삶에서 전부는 아니라 할지라도 일정 부분은 자기가 받은 축복으로 인해 하나님을 잘 섬겨온 마음도 있다는 것이 살짝 드러나 보이는 고백입니다. 처음부터는 아니라할지라도 하나님이 주신 복을 계속 누리다보니 욥의 마음에 하나님이 주신 복에 대한 애착이 강해지게 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사라진 지금,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누리던 삶에 대한 은혜를 회상하기보다는 사라진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깊은 회상을 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누구라도 욥을 비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욥기를 읽다보면 더욱 우리 신앙의 현재 자리를 돌아보고 성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일까? 내게서 하나님이 주신 것을 다 가져가신다면 나는 여전히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을까?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과 불평 없이 한결 같이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들을 다시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고민의 과정이 우리의 신앙을 더욱 진실하고 순결하게 만들어 가는 과정이 되리라 믿습니다. 오늘도 욥기의 말씀을 놓고 기도하는 시간이 우리의 신앙을 성실하게 돌아보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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