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30장 1~15절 11월 23일 화요일
29장에서 욥은 지난날의 행복하고 풍요로웠던 때를 회상하며 그때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염원하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30장에서는 오늘 현실에서 자신이 겪고 있는 수치와 아픔에 대해 토로하고 있습니다.
이 두 대조적인 상황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단어는 29장 3,5,7절에 반복적으로 언급된 ‘그때에는’이란 단어와 30장의 1,9,16절에 언급된 ‘이제는’이라는 단어입니다.과거에 누렸던 영화와 부귀와 명예는 모두 사라지고 조롱과 멸시의 나락으로 떨어진 현실에 대한 깊은 탄식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욥을 비난하고 조롱하는 자들이 누구입니까?
욥이 영화롭게 살았던 ‘그때’에 자신이 보기에도 비루하고, 양을 지키는 개들만도 못하다고 여겼던 사람들의 자식들입니다. 그들이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었는지 욥은 아주 소상히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가난에 허덕이고 모골이 파리하고 메마른 땅에서 흙을 씹던 이들이었습니다.
사람 축에도 끼이지 못하여 동네 사람들에게 도둑 쫓기듯 쫓겼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침침한 골짜기와 구덩이, 동굴에서 마치 짐승처럼 웅크리고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어리석고 이름도 없고 자기 고장에서 쫓겨난 자들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사람 같지도 않은 자들이었는데, 이젠 그런 자들의 자식들까지 자기를 조롱하고 비웃는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침을 뱉기도 합니다.
그런 비루한 자들에 의해서까지 조롱받는 현실이 더 견디기 힘든 것입니다. 15절에 보면 ‘그들이 내 품위를 바람같이 날려 버리니’라고 개탄합니다. 이같은 재앙의 상황에서도 ‘품위’가 떨어진 것을 개탄하고 있는 것을 보면 욥이 지금의 상황을 얼마나 수치스럽게 여기고 있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아마 이들도 욥의 도움을 얻었던 이들 중 한 부류일 것입니다. 그런데 1절을 보면, 욥이 이들을 개만도 못하게 여기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죠. 마음에 그런 생각을 품고 있었다면 이들이 평소 욥에 대해 진심어린 존경을 갖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욥이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고 부유했을 때에야 도움을 받을 때엔 욥에게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다른 백성들도 욥을 무시하는 상황이니 이들도 그런 분위기를 알고 욥을 대했을 것입니다. 그래도 이들은 사회에서 가장 비천한 자들인데, 그런 부류들에게서까지 모욕을 당하는 신세가 된 것이 너무 괴롭고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고백은 욥 자신이 그야말로 가장 밑바닥으로 떨어져 있다는 것을 감정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인생에서 더 이상 떨어질래야 떨어질 데가 없는 가장 밑바닥에 굴러 떨어져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나 여기까지 추락해 있으니 나좀 봐주십시오’ 이런 마음이 엿보입니다.
그렇게 보게 되는 이유가 11절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욥은 이 모든 것의 원인이 하나님이 자기 활의 시위를 느슨하게 하시고 무력하게 하셨기 때문이라고 탄식하고 있거든요. 결국 하나님께 보란 듯이 항의하고 탄원하는 원망이면서, 하나님이 얼른 손을 내밀어 불쌍한 자신을 끌어올려주시기를 바라는 갈망이 함께 섞여 있는 것입니다.
실패를 주시고, 아픔을 주셨지만, 다시 그 시절의 은혜와 영광을 회복시켜 주실 분도 하나님 밖에 없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욥의 딜레마이지만, 우리가 가진 딜레마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 서운할 때도 있지만, 우리에게도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서운해도, 아파도 다시 하나님을 바라볼 뿐입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도 그와 같은 심정으로 오늘 주께 기도하시고 우리 교우들과 수고하는 선교사들을 위해서도 그와 같은 간절함으로 기도에 동역해 주시기는 하루가 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