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이 계속 자신의 무죄함과 의로움을 주장하였기에 세 친구들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습니다. 이젠 하나님께서 등장하실 차례인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그동안 등장하지 않던 엘리후라는 인물이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엘리후는 몹시 화가 나 있습니다. 그가 화를 내며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가 화가 난 상태에서 대화에 끼어들게 된 이유는 첫째, 욥이 계속 자신의 무죄함과 의를 주장하면서 하나님께 모든 책임을 돌리고 있었기 있었기 때문입니다. 둘째, 세 친구들이 욥이 주장하는 이야기에 제대로 반박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참고 있었지만, 이젠 더 이상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침묵할 수만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이 세가지 이유 중에 엘리후가 욥과의 논쟁에 나선 가장 큰 이유는 욥이 자신의 의로움을 끝까지 주장하면서 재앙의 원인이 하나님께 있다고 말하는 첫 번째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엘리후 또한 욥의 마음을 읽어주는 위로자의 자리보다는 세 친구들과 비슷하게 욥을 책망하는 자리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줍니다.

엘리후의 이야기는 37장까지 길게 이어집니다. 엘리후는 자신이 가장 나이가 어리다는 점을 인식해서인지 8-9절에 이런 얘길 합니다. “사람의 속에는 영이 있고 전능자의 숨결이 사람에게 깨달음을 주시나니 어른이라고 해서 지혜롭거나 노인이라고 정의를 깨닫는 것이 아니니라.”

지혜롭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이 주시는 은총이며, 이것은 나이와는 상관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말입니다. 이 말에서 엘리후는 자신이 세 친구들보다는 지혜롭다고 여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욥에 대하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좀더 지혜로운 사람의 입장에서 욥에게 충고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엘리후의 이야기도 욥의 마음의 자리에 서 있지는 못합니다. 욥을 이해하고 헤아리려는 모습은 엘리후에게서도 부족하게 보입니다.

사실 엘리후의 이야기는 앞의 세 친구들의 이야기에서 좀 더 확장된 이야기로 주어집니다. 그러나 엘리후가 한 말 중에 부인할 수 없는 사실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전능자의 숨결을 통해 즉 하나님의 영, 성령에 의해 지혜가 주어진다는 점입니다. 사도 요한도 요한복음 14:26에서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은 지혜의 영이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도 고전12:8에서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은 엘리후의 이야기 중 8절을 중심으로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숨결, 지혜의 영을 부어주시어서, 현재의 시간들을 아프게 견뎌내고 있는 이들과 그 시간을 같이 보내고 진실한 마음의 위로를 나눌 수 있는 교회와 성도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교회에 대해 거친 말들도 많지만, 실상 사람들은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을 느끼고 경험하기를 바라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조금이라도 그 통로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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