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38-39장에서 수많은 질문들을 쏟아내신 하나님은, 하나님의 창조 영역에서의 욥의 역할이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임을 드러내셨습니다.

욥은 그토록 간절히 원하던 하나님과의 대면에서 실로 하나님 앞에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노라고 대답을 하게 됩니다(4-5절). 욥의 대답 이후 하나님은 인간의 역사 속 ‘정의’의 문제를 다루시면서 거기서의 욥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물으십니다.

하나님은 7절에서 욥을 향해 남자답게 다시 일어서서 당신의 물음에 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시면서 “어디 한 번 위엄과 존귀를 갖추고 영광과 영화를 갖추고 교만한자들을 향해 너의 분노를 쏟아 부어 보아라, 악한 자들을 짓밟아 보아라, 그들을 땅에 묻어 보아라, 네가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나는 네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 존재라고 인정해 주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욥은 악의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고 악인들을 심판할 능력도 힘도 없습니다. 인간사의 정의의 문제도 욥의 영역을 훨씬 넘어서는 일이었습니다.

그후 15절부터 베헤못이라는 큰 짐승을 언급하시면서 욥의 무능함, 유한함에 대해 한 번 일깨워 주십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짐승 중 하나인 베헤못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이 욥에게 없음을 확인시켜 주십니다.

결국 세상 모든 일에 욥이 개입할 수 있고 영향력을 끼칠 수 있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이 극히 미약하다는 점을 상기시킵니다. 욥은 그런 존재였습니다. 우리도 그런 존재입니다. 악을 심판하지도 못하고 다스리지도 못합니다. 악의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그 세상이 질서 있게 운행하도록 주관하시는 분이시며 동시에 인간의 역사 속에서도 정의와 공의를 가지시고 인간사를 주관하고 계시다는 것을 욥에게 알려주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잠잠히 계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계십니다. 인간의 문제만이 아니라 자연 세계의 삶에도 관여하고 계시다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섭리 속에서 이 세상이 운행해 가도록 쉬지 않고 일하고 계심을 깨닫게 해 주고 계십니다.

인간이 만나는 재앙 속에 하나님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저 지켜만 보고 계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려고 하신 것입니다. 그동안 욥은 의로운 자신이 재앙을 당하는 현실 속에서도 악인은 평안한 것처럼 보였기에 하나님께 ‘왜 악인은 그대로 두시고 나와 같은 의인에게 재앙을 주시는 거냐’고 따져 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결국 교만한 자는 비천하게 하실 것이고, 악한 자는 짓밟으실 것이라는 사실을 이렇게 둘러서 표현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계속 욥에게 자신의 무능함을 철저하게 고백하게 하시면서 오직 하나님께서 선하게 세상을 다스리실 것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살아간다면 반드시 그분이 이루시는 구원을 보게 될 것이라는 점을 상기시키고 계신 것입니다.

욥기가 던지는 메시지는 가볍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 또한 하나님이 교만한 자들을 낮추시고 겸손한 자들은 높이시며, 악인은 멸하시고 의인은 구원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세상이 비록 불의하고 악하다 하여도 성도는 그런 세상을 불평 가운데 살아가기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공의를 신뢰하며 믿음의 걸음을 신실히 걸어가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싶으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와 여러분 오직 믿음의 남은 자가 되어 신실하게 주안에 살아가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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