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위로 차 찾아온 친구들과의 대화가 이어집니다.

가장 먼저 말을 하는 이는 데만 사람 엘리바스입니다. 엘리바스는 찾아온 세 친구 중 가장 연장자입니다. 인생에 대한 경험이 누구보다 많은 엘리바스인데, 욥을 향한 그의 조언과 위로가 무엇인지를 한번 보겠습니다.

엘리바스는 2절에 “누가 네게 말을 걸면 짜증스러울 것 같아 말을 하지 않으려 했으나 참을 수 없었다.”라며 욥에게 조언을 합니다. 엘리바스는 전에 욥이 여러 사람들을 가르치고 조언을 하고 어려운 이들을 격려하고 도왔던 일들을 떠올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정작 어려운 일이 네게 닥쳤을 때 너는 그들에게 조언하던 대로 하지 못하고 낙담만 하는구나.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너의 믿음이 이런 것이냐? 온전한 길을 걸어온 너의 희망이 이런 것이냐? 잘 생각해 봐라. 죄 없는 사람이 망한 적이 있었더냐? 정직한 자가 멸망을 당하더냐? 내가 본 바로는 악을 행한 자들은 모두 하나님의 입김에 날아가 버리는 거야.”

지금 하는 엘리바스의 이야기는 슬픔을 당한 욥에게 주는 위로가 아닌 욥을 향한 책망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물론 앞에서 욥이 하나님에 대해 탄식을 쏟아내고 자기의 인생과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괴로운 마음을 토해내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엄청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이에게 해 줄 말은 아닌 것입니다.

엘리바스의 말은 욥이 죄가 있어서 이런 고통을 받고 있는 것 아니겠느냐는 비난처럼 들리기 때문입니다.

엘리바스는 인생의 경험이 깊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폭넓은 관용과 이해를 가지고 위로하기 보다는 살아온 인생만큼 자신의 생각만을 견고하게 쌓아온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엘리바스의 조언은 방향을 잃고 허공에 떠돌아다니고 있습니다.

물론 엘리바스의 이야기 중에는 맞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악을 밭 갈고 독을 뿌리는 자는 하나님의 입 기운에 멸망할 것입니다. 그러나 경건한 자와 정직한 자가 죄 없이 멸망한 일을 본 적이 없는 자기 경험 속에서 나온 판단으로 마치 욥이 죄인인 듯 몰아가는 것은 바르지 않은 태도입니다.

사실 정직한 자나 경건한 자도 어려움과 고통을 겪을 수 있습니다. 욥이 죄가 있어서 당하는 고난이 아니라는 사실은 1장과 2장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욥이 얼마나 정직하고 온전하고 악에서 떠난 삶을 살았는지는 하나님도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욥의 고난은 죄인이 겪는 고난이라고 말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엘리바스의 말은 좋은 의도로 한 충고일지는 몰라도, 고통을 당한 욥에게는 더욱 깊은 상처를 남길 수도 있는 것이었습니다. 상대방이 악한 일을 할 때에는 따끔한 충고가 요구되지만, 아픔을 당한 이들에게는 충고의 말은 되도록 아끼는 것이 좋습니다. 충고보다는 안아주고 위로하는 것이 더 큰 치유의 길이라는 것을 우리도 늘 기억하여 지혜로운 조언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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