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은 엘리바스의 이야기에 대한 욥의 답변입니다.

욥은 엘리바스에게 자신이 당한 고난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욥은 자신의 고통의 무게가 바다의 모래보다 더 무거울 것이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말이 경솔했던(거칠었던) 것이 그 고통의 무게 때문이었다고 말합니다. 욥의 이 말은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입니다.

우리도 삶이 빡빡해지거나 궁지에 내몰리거나 위기가 엄습해오면 마음의 여유가 없어지기 때문에 말도 행동도 거칠어집니다. 그럴 때 하나님을 향해서도 격한 말로 탄식할 때가 있습니다.

욥이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말을 쏟아 냈던 것이 그 무게를 감당하기 어려워서였다고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4절에서 욥은 계속 자신에게 임한 고통의 무게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를 과녁삼아 화살을 쏘셨고 내 영혼이 그 독을 마셨다. 하나님이 나를 몰아치시니 두려움이 엄습해올 뿐이다”

욥은 자신의 고통이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었고, 그러하기에 고통의 무게가 감당하기 어렵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고통이 아니라면 자신에게 이와 같은 고난이 올 리가 없다고 욥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욥은 누구보다도 철저하게 하나님의 규례를 지켜왔기 때문입니다.

10절에서도 욥은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욥은 자신이 무죄하다는 것을 항변하고 있습니다. 그런 자신에게 이같은 엄청난 고통이 주어졌다는 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 아니고서는 납득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무죄한 나에게 왜 이런 고통을 주신 것일까?’ 욥은 수없는 밤을 괴로워하며 지새웠을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자신은 하나님을 향해 탄식을 쏟아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욥은 8-9절에서 이렇게까지 말합니다. “나의 소원을 하나님이 들어주신다면 하나님이 나를 부수시고, 손을 들어 나를 깨뜨려 주시면 오히려 그것이 나에게 위로가 될 것이고 이런 무자비한 고통 속에서 그나마 위로가 될 것이다. 내가 무슨 기력이 있어서 더 견뎌낼 것인가? 내 기력이 돌이나 쇠의 기력이라고 되겠느냐?”

욥의 얘기를 들어보면 이 말들은 엘리바스에게 하고 있는 말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을 향해서도 항변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렇습니다. 욥은 지금 하나님께 항변하고 있습니다. ‘차라리 생명을 거두어 가 주시는 것이 더 기쁘겠다’고 하나님께 항변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 욥의 고백을 듣고 있노라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그러면서도 욥이나 우리나 인생의 어려움을 만날 때 과연 누구에게 탄식을 쏟고 누구에게 항변할 수 있을까요? 생각해보면, 우리에게도 하나님 밖에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도 하나님만이 그 탄식의 대상이 되십니다. 응답이 올 때까지, 구하고 찾게 되기까지 두드리고 부르짖을 대상은 오직 하나님 밖에는 없습니다. 인생의 문제 앞에 섰을 때, 비록 오늘 그 문제의 답이 주어지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저와 여러분 모두 항상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의 시간을 멈추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결국에 하나님이 응답해 주시는  은혜를 여러분 모두 만나게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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