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에 이어 계속 되는 욥의 기도입니다.

오늘 기도를 읽어보면 솔직한 욥의 마음 상태를 알 수 있게 됩니다. 특히 15절부터 그 심정이 표현되고 있는데 상당히 격하게 말합니다. 기도라기보다는 불평을 쏟아내고 있는 듯합니다.

“나는 사는 게 싫습니다. 영원히 살 것도 아닌데 나를 혼자 내버려 두십시오. 내 인생이 허무하기 짝이 없습니다. 내가 뭐라고 왜 이리 나에게 관심을 두십니까? 왜 아침마다 나를 시험하십니까? 주님 언제까지 나를 떠나지 않으시려고 하십니까? 나를 잠시만이라도 가만 내버려 두십시오. 내가 죄를 지었다한들 나를 과녁삼아 내가 내게 짐이 되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한 마디 한 마디가 심문하는 자처럼 따집니다.

오늘 욥의 기도에서 눈에 띄는 구절은 12절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마치 바다괴물처럼 여기신다고 말하면서 “주께서 어찌하여 나를 지키시나이까?”라고 부르짖고 있습니다. ‘나를 지키신다’고 말할 때의 ‘지킨다’는 단어는 여기서는 ‘감시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다 괴물을 감시하듯 자신을 감시하고 계신다며 항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욥은 지금가지 하나님께서 자신을 지켜보시고 돌보셨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감시하는 것처럼 느끼고 있습니다. 똑같이 지켜보고 계시는데 왜 지금은 감시받는 것처럼 여기게 된 것일까요? 그건 자신의 상황 때문입니다.

만약 자신이 형통한 상황에 처해 있다면 이렇게 느끼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자신을 지켜보고 계시는 하나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욥의 상황은 형통한 것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상황이기에 하나님의 지켜보심조차 감사하시는 것으로 여겨진 것입니다.

하나님이 욥을 지켜보시는 상황은 같지만, 욥은 자신의 처지에 따라 다르게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동일하신데 우리의 처지와 상황에 따라 하나님을 다르게 해석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연약함입니다.

유리한 상황에 있을 때와 불리한 상황에 있을 때의 느낌이 달라진다는 것이죠. 상황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하나님, 처지에 따라 다르게 고백되는 하나님, 내게 주어지는 여건에 따라 다른 고백을 드리는 것이 연약한 우리들입니다. 아침에 감사를 고백하다가도 저녁에 어려움을 만나면 원망을 고백하는 것이 우리의 연약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기다려주시고, 사랑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 사실을 너무도 잘 알기에 욥은 21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어찌하여 주님께서는 내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시고, 내 죄악을 용서해 주지 않으십니까? 이제 숨져 흙으로 돌아가 버리면 주님이 저를 찾으시려고 해도 나는 이미 없는 몸이 됩니다.” 자신이 죽기 전에 어서 도와달라는 메시지입니다. 흙으로 돌아가 버리기 전에 주님이 손을 써 달라는 간절한 염원입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드리는 하소연입니다.

뒤집어 우리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우리들도 흙으로 돌아가 버리기 전에 어서 하나님께 나아가고 더 많이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고, 더 깊이 주님과 그리고 믿음의 동료들과 사랑의 삶을 이루어 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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