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9장 25~35절 10월 19일 화요일
욥의 탄식이 계속 이어집니다.
욥은 25절에서 자신의 날이 경주자보다 빨리 지나고 있는데, 마치 독수리가 먹잇감을 노리고 내려오는 것처럼 빠르게 느껴진다고 말합니다. 인생의 날들이 허망하게 지나고 있음을 절망감을 담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나서 이런 고백을 합니다. 27절, 28절 “내 불평을 잊고 얼굴빛을 고쳐 즐거운 모양을 하자 할지라도 내 모든 고통을 두려워하노니” 이 고백에서 욥의 또 다른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욥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억울하고, 서운한 마음을 토로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마음을 고쳐먹고 새롭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는 모습을 보인 것입니다. 우리도 그런 두 마음이 존재합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화도 나고, 낙심도 하지만, 다른 편에서는 더 잘 해보려는 마음, 다시 시작해보려는 마음도 갖게 되는 것처럼 욥도 그런 마음이 존재하고 있음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새롭게 시작하려고 하는 마음을 품고 있는 욥의 마음에 두려움도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혹시 그렇게 살아보려고 하는 자신에게 하나님께서 또 정죄하실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자신을 정죄하기라도 하신다면 애써 노력한 것이 다 헛되는 것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몰려온 것입니다.
욥의 이런 두려움은 죄 없이 너무 큰 고난을 겪어내고 있기 때문에 갖게 된 두려움입니다. 그와 같은 고난이 반복해서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재앙을 막아주시면 괜찮겠지만, 지금의 고난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고난인 듯하여 불안한 마음이 떠날 수 없는 것입니다.
30절과 31절을 읽어보면 욥의 마음이 무언지 조금 헤아릴 수 있습니다. 자신이 비누로 몸을 씻어도 하나님이 다시 개천에 빠뜨리시게 되면 자기 옷까지도 자기를 싫어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며 자신이 하나님의 관심 밖에 있는 존재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34절에서 하나님이 자신에게서 채찍을 거두어 가시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아마 우리라도 이런 생각에 사로잡힐 것입니다. 욥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는 가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개천에 던져 넣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또한 우리가 하소연하고 탄식한다고 해서 우리의 입술을 닫으실 분도 아니십니다.
욥은 두려움에 젖어 이런저런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으나 이런 걱정이 결국 욥의 기우였음이 나중에 드러납니다.
우리를 자녀삼으신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우리를 성숙하게 하실지언정 우리를 고난에 던져 넣고 즐기시는 분이 결코 아닙니다.
그저께 아내가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매일 아버지와 자면서 아버지가 기저귀에 실수하신 것을 일일이 다 치우고 매일 아침 씻겨드리고 있는데, 갑자기 이런 일이 닥쳤으면 힘들었을 텐데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서 해내고 있는 것 같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2년 전부터 아버지를 모셔야 할 상황이 오면 자기가 모셔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계속 기도하면서 마음의 준비를 해 오고 있었기 때문에 감당하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우리라 할지라도 우리의 건강이 어떻게 될지는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항상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잘 이겨내는 믿음을 갖게 해 달라고 기도로 준비하는 것이 꼭 필요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욥과 같은 고난은 이겨내기가 어려울 수 있지만, 좋은 상황, 축복, 성공, 풍요 만을 위해 기도하기 보다는 비천에 처할 때도, 궁핍에 처할 때도, 실패에 처할 때에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지혜로운 성도의 모습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바라기는 여러분의 삶에 늘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나 혹여라도 고난이 올 때 이기는 성도가 되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항상 앞의 기도와 더불어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