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의 한 장면입니다.

12장은 예루살렘에 입성한 날의 일을 기록했는데, 13장은 그후 4일 동안에 있었던 일들에 대한 기록은 하지 않고 예수님이 죽으시기 전날의 일로 넘어가서 기록한 걸 보면, 요한의 마음에 이날의 사건이 굉장히 깊이 각인되었던 듯합니다.

그날 주님이 저녁을 드시던 중 갑자기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 허리에 두르셨습니다.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기 시작한 것입니다. 제자들이 주님의 행동에 상당히 당황스러워 했습니다.

베드로가 “주님, 지금 제 발을 씻기시려고 하시는 것입니까?” 놀라서 묻자 예수님은 지금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후에는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하시며 발을 씻기려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베드로는 강하게 거부하는데, 주님의 이어지는 말씀에 베드로가 자신의 발을 내어드리게 됩니다.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으니라”

‘상관이 없다’는 말은 단어의 의미 그대로 이해하면, 연관되는 부분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 말에 베드로가 발을 내어주면서 발뿐만 아니라 손과 머리까지도 씻겨달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후 14-15절에 제자들을 향한 당부를 남기십니다.

“내가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마태복음 20장을 보면, 발을 씻기시기 전에 제자들 사이에서 일어난 사건을 증언하고 있는데(마20:20-28), 바로 제자들 사이에서 일어난 ‘누가 크냐’라는 논쟁이었습니다. 주님의 죽음을 앞에 두고도 제자들은 서로 누가 더 큰 지에 대해 관심을 두고 있었고, 그것으로 인해 갈등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오늘 13장 1절 마지막 부분을 보시면 그런 제자들을 향해 주님은 끝까지 사랑하셨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굳이 연결해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이 서로 높아지려고 다투는 순간에도 그들을 향한 사랑의 끈을 놓지 않으시고, 서로가 서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발을 씻기시는 행위를 통해 전해주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상관이 없다’라고 언급하신 8절의 말씀도 ‘서로 섬기지 않으면 나와 상관이 없다, 나를 닮을 수 없다. 나와 연결되지 않는다’라는 의미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주님과의 중요한 연결고리는 내 앞에 있는 이를 섬기는 삶이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발을 씻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상대의 더러운 발 앞에 허리를 숙이고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크고 높고 존귀한 사람 앞에서 허리를 숙이고 무릎을 꿇기는 하지만, 허물이 있는 이에게, 자신보다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 허리를 숙이고 무릎을 꿇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허물 많은 제자들, 자기가 더 크다고 다투는 제자들을 향해 허리를 숙이고 무릎을 구부리셨습니다. 이 가르침이 요한에게는 아주 깊게 각인된 듯 합니다. 그래서 이 사건을 특별히 기록하여 남겨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더불어 한 가지만 더 주목해 보자면, 14절 끝에 “서로 발을 씻어주는 것이 옳으니라”고 하신 말씀에서 ‘옳으니라’는 말의 원어적 의미를 주목해 보면 좋겠습니다.

‘옳으니라’는 말로 번역된 단어는 원래 ‘빚을 지다, 의무를 지니다’라는 뜻입니다.

요한이 왜 이 단어를 사용했을까요?

제자들이 그리고 성도들이 이 말씀을 읽을 때 ‘너희가 서로 발을 씻어주는 일에 빚을 지고 있다’는 뜻으로 읽기를 바란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에 그런 의미가 있음을 드러낸 것입니다. 마치 빚을 갚는 것처럼 서로를 섬겨야 한다는 가르침으로 요한은 이해한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주님을 많이 닮는 사람, 주님과 더 많은 상관이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진정 빚을 진 사람의 마음으로 서로에게 마음의 허리를 숙이고, 무릎을 꿇는 섬김의 모습이 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