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455장

요한1,2,3서는 사도 요한이 말년을 에베소에서 보내면서 기록한 서신입니다. 주후 90년 경에 쓰여졌다고 추정됩니다. 사도 바울의 순교 이후 거의 30년이 지난 후에 기록된 서신서입니다. 박해와 이단의 공격, 교회의 분열의 위기 속에 있는 성도들을 이단으로부터 보호하고 하나님과의 바른 교제의 삶으로 인도하기 위해 기록된 서신입니다.

세편의 서신을 읽어보면, 요한은 하나님과의 진실하고도 친밀한 교제가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임을 역설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진실한 관계가 살아있는 성도는 이웃과의 관계에서 사랑의 삶으로 드러나게 된다는 가르침을 주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드러나야 하는지에 대해 중요하게 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신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관계임을 강조하고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찬찬히 돌아보면 우리 삶의 문제도 모든 것이 관계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관계가 천국과 지옥의 열쇠라고도 했습니다. 관계가 좋으면 그 삶이 천국이고, 관계가 나쁘면 그 삶이 지옥이 된다고도 말합니다.

삶의 핵심은 관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부모와 사이가 좋으면 아이들에게는 가정이 천국이 되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가정은 지옥이 될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 친구들과의 관계가 좋으면 그곳이 천국이고, 그렇지 않으면 지옥입니다. 모든 공간이 그렇습니다. 심지어 교회에서도 관계가 핵심입니다. 교우들 사이에, 그리고 목회자와의 사이에서 관계가 행복하면 교회 생활에서 천국을 맛보게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교회마저 지옥과 같을 수 있습니다.

요한은 그 모든 관계에서의 핵심이 바로 하나님과의 사귐이라고 말합니다.

1장 3절에서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요한이 성도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 성도들이 꼭 알기를 바라는 것이 바로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의 사귐’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 2:28에서 “자녀들아 이제 그의 안에 거하라”고 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불리게 하실 만큼 사랑하신 것이니 이제 그의 안에 거하여 사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를 짓는다면 그는 불법을 행하는 자가 되는데, 그렇다면 죄가 없으신 주님 안에 거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라면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한 자가 됩니다. 하나님과 주님과 사귐을 가질 수도 없습니다. 아니, 거꾸로 말하면, 주님과의 사귐이 없기에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누군가 죄를 범한다면 그는 마귀와 사귐이 있는 자라는 것을 증명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오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시려는 것인데, 죄를 짓는다면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난 사람이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과의 사귐이 있는 사람은 죄가 아닌, 형제를 사랑하는 삶 속에 머물게 됩니다.

코로나의 위기 속을 살아가는 요즘 우리에게 형제와 이웃을 사랑하는 삶이란 어떤 것이어야 할까요? 오늘 말씀과 더불어 묵상하는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등록하기